제자리에서 피운 꽃

신동숙의 글밭(153)


제자리에서 피운 꽃





작약, 수레국화, 양귀비, 민들레, 금계국, 개망초, 철쭉, 소나무꽃, 초록 잎사귀, 둘레에는 언제나 넉넉한 하늘


초여름 강변에 피운 꽃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쉼 없이 떠돌아 다니는 생각은 바람이 되고
집 없이 자꾸만 흐르는 마음은 강물이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저절로 알 때
제자리에서 피운 꽃들에게서 배웁니다.


바람이 꽃이 되고
물이 꽃이 되는 길을


제자리에 머물러
머리 위에 하늘을 이고
진리의 땅에 사색의 뿌리를 내리는


들숨 날숨에 기대어 마음을 내려놓으며
명상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일상 속에 그려봅니다


상관없는 모든 아픔에까지 빗물 같은 눈물을 흘리다가
햇살 같은 웃음을 욕심 없이 짓다 보면

씨앗처럼 작고 단단한 가슴이 열리어


제가 앉은 자리에서도
제 안에 아무 것도 없던 땅에서도


진실의 꽃 한 송이
저절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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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2)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에서 깨었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리, 새들이었다. 필시 두 마리 새가 나란히 앉아 밤새 꾼 꿈 이야기를 나누지 싶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새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여겨지질 않았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데도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고, 윤기 있는 소리에 듣는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단지 새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새들이라고 무조건적인 아량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 이른 시간 끊임없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데에는 분명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세수를 할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언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언 27:14)는 구절이었다.


그동안 교회는 축복을 한다는 이유로 새벽에 큰 소리를 냈던 것은 아닐까, 큰 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웃을 향하여 지금 축복을 하는데 그게 무슨 가당치 않은 반응이냐며 오히려 불쾌하게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축복을 한다고 해도 이른 새벽의 큰 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저주와 다를 것이 없는 데도 말이다.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마땅히 전하는 방법 또한 축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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