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6)


괴리감


전해진 것이 전부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얼마 전 뉴스에 언급된 교회가 있었다. 교회가 리더십 훈련을 한다며 대변 먹기, 음식물 쓰레기통 들어가기, 공동묘지에서 지내기 등을 강요했다는 내용이었다. 


교회와 관련한 뉴스 중에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뛰어 넘는 기괴한 뉴스가 한둘이 아니어서 이력이 붙을 만도 했지만, 대변 이야기는 이력이 붙을 대로 붙은 이들에게도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지 싶다. 혀를 차는 것을 넘어 경악을 하게 했다.


뉴스 중 관심이 갔던 것은 조금 다른 것에 있었다. 그 교회 교인이 2-3천 명 정도가 되는데, 대부분이 젊은 교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성실하고 우직하게 목회의 길을 걸어가는 적지 않은 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성품도 따뜻하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역사의식도 뚜렷하고, 환경을 걱정하고, 교회와 교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기교와 술수를 버리고, 약자를 긍휼히 여기고, 헛된 욕심을 삼가고, 가난함으로 부르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 땅 구석구석 외진 곳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규모로 따진다면 주목을 받을 일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면 실패 쪽에 훨씬 더 가깝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느끼는 감정을 괴리감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괴리’(乖離)는 ‘어그러질 괴’(乖)와 ‘떼놓을 리’(離)가 합해진 말이다. 굳이 그리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괴리감이란 훨씬 단순하다. ‘괴로운 거리감’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들은  (0) 2020.05.30
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0) 2020.05.29
괴리감  (0) 2020.05.27
로봇이 타 준 커피  (0) 2020.05.27
상처와 됫박  (0) 2020.05.26
고소공포증  (0) 2020.05.25
posted by

로봇이 타 준 커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5)


로봇이 타 준 커피


심방 차 해남을 방문하는 일정을 1박2일로 정했다. 길이 멀어 하루에 다녀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다. 마침 동행한 장로님이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숙소가 있어 그곳에 묵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어둘 녘에 도착한 숙소를 보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진도라는 외진 곳에 그렇게 큰 숙박시설이 있는 것에 놀랐고, 그 큰 숙소가 꽉 찬 것에 더 놀랐다. 평일이었는데도 그랬으니 말이다. 


권사님이 권한 일출을 보기 위해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남해의 일출은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달랐다. 바다 위가 아니라 섬과 섬 사이에서 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해가 떠오르며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던 붉은 빛은 바라보는 마음까지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해돋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차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프런트에 들러 차 마실 수 있는 곳을 물었다. 일러주는 옆 건물로 갔더니 커피 향은 나는데도 차를 파는 곳은 보이질 않았다. 지하까지 내려가 물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1층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와 둘러보았지만 1층 어디에도 찻집은 없었다.


이게 뭐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우리 눈에 띈 것이 로봇이었다. 한쪽 구석에 로봇이 서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장식용으로 세워둔 것으로 알던 우리는 혹시나 싶어 로봇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말한 곳이 그곳이지 싶었다. 


처음 대하는 상황, 서로가 이런저런 상상력을 발휘하며 모니터를 두드렸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은 맞았다. 몇 가지를 택한 뒤 선택 자판을 누르니 드디어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숙한 동작으로 커피와 음료를 뽑았다. 뽑은 음료를 쟁반 쪽으로 옮기는 동작까지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주문을 끝났지만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만났다. 음료는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꺼낼 수 있는지가 막막했다. 로봇은 아크릴 투명 벽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살펴보니 로봇 앞에 작은 스크린이 있었고, 거기에 번호를 입력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조금 전 차를 주문하며 받은 영수증에 번호가 찍혀 있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었다.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영수증을 다시 꺼내 거기 찍힌 번호를 누르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로봇, 마침내 우리는 원하는 음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로봇에게 음료를 주문하는 일을 마침내 해내다니, 우리는 일종의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발코니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누군가의 말대로 마치 지중해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의 삶 속에서 멀리 떠나와 있다는 것, 드물게 아름다운 경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거드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다. 로봇에게 차를 주문해서 마시는 것이 마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 온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건 상관없이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0) 2020.05.29
괴리감  (0) 2020.05.27
로봇이 타 준 커피  (0) 2020.05.27
상처와 됫박  (0) 2020.05.26
고소공포증  (0) 2020.05.25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0) 2020.05.24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