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요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4)


어느 수요일


광철 씨가 아프단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폐가처럼 썰렁한 언덕배기 집, 이미 집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잡풀이 수북이 자라 올랐고, 장마 물길에 패인 것이 그대로라 따로 길이 없었습니다.


흙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좁다란 방에 광철 씨가 누워있었습니다. 찾아온 목사를 보고 비척 흔들리며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야위었습니다. 퀭한 두 눈이 쑥 들어간 채였습니다.




이젠 학교에 안 가는 봉철이, 아버지 박종구 씨, 광철 씨, 좁다란 방에 둘러 앉아 함께 두 손을 모았습니다. 빨리 낫게 해 달라 기도하지만, 내 기도가 얼마나 무력한 기도인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의 몸살보다는 몸살이 있기까지의 어처구니없는 삶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방바닥에 그냥 놓인, 언제 가도 그냥 그 자리인 몇 개 그릇이 또 그대로이고, 그 옆 점심 찬이었지 싶은 간장 종지 하나 달랑 놓였는데, 그런 자리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조차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듬더듬 기도하고 도망치듯 돌아섰습니다. 


그날 저녁, 수요예배를 거의 마칠 즈음 예배당 문이 열렸습니다. 보니 광철 씨였습니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은 광철 씨가 두 손을 모았습니다. 가만히 무릎을 꿇고서.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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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마당 뒷설거지

신동숙의 글밭(226)


어수선한 마당 뒷설거지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후 잇달아 올라오는 태풍 피해 소식에 마음이 무거운 날이다. 난생 처음으로 밤새 무섭게 몰아치는 강풍에 잠이 깨어서 내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하였다. 날이 밝은 후 내가 살고 있는 집 마당에도 어김없이 밤새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들로 마음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언제 다 치울까 싶다.


자정 무렵 태풍이 지나가기 전 그날 오후에 친정 엄마가 마당에 있는 깻잎대와 고춧대를 뽑아내시면서 한바탕 마당 대청소를 하시느라 땀 흘리신 정성은 흔적도 없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을 수습하느라 최전선에 계신 분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까? 이제 겨우 숨돌리는가 싶었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올 2월에 신천지 교인으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울산에서는 7월 25일까지 58명의 확진자가 울산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울산은 100일간 확진자 0명을 기록하기도 하며, 이후의 전염은 여름이 되면서 필리핀 등 해외 입국자를 통한 전염이 몇 차례 있었을 뿐이다. 


자녀들은 6월부터 등교를 시작하면서, 여름 방학 전까지 마스크를 쓰고서 안전 수칙을 잘 지키며 학교와 학원을 자유로이 다니며 친구들과 시내에서 떡볶이도 사먹고 영화도 보며 평범한 일상을 누려왔었다. 그러는 동안 필자가 받은 울산시 안내 문자 내용은 대부분이 자연 재해 방지와 코로나19 안전 수칙에 대한 거듭 당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광복절 아수라장 집회 이후 오늘까지 안내 받은 확진자는 111명이다. 그날 집회 이후 곧바로 끊임없이 집회 참가자에게 검사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절해서 올라간 버스가 16대~20대라고 하는데, 자진해서 검사를 받는 인원수는 턱 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보름 여 만에 확진자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두 자녀와 집 안에만 있기로 하는 것이다. 


일곱 군데의 학원을 못 보내고 있는 실정에서, 모두가 원치 않는 이 상황이지만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선결재 학원비를 모두 다 입금해 드렸다. 그리고 지금은 급속도로 올라가는 확산세가 누그러지기를 잠잠히 집안에 머물며 기다릴 뿐이다. 집회 참가자 분들이 속히 자진해서 검사를 받으셔서 치료와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면하는 입장이다. 대절한 버스에 올라 타고 서울에 다녀오신 그분들도 누군가에겐 부모이자 소중한 가족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두 아이들의 개학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지난주부터 온라인 등원을 하고 있는 두 자녀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앗아간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이다. 아주 어릴 때 같으면 책이라도 읽어주면 되겠지만, 큰 자녀들에게는 책보다는 텔레비젼과 핸드폰이 강세다. 이것저것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 무거운 일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모질던 태풍이 지나간 하늘 자리는 맑고 푸르기만 하다.

 

동남향으로 앉은 집이라 마당에 그늘이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3시 경이 되어서야 담밑에까지 그늘이 진다. 그제서야 태풍 뒷설거지를 하러 마당으로 나갔다. 바로 전날 대청소를 했던 친정 엄마의 손길은 흔적도 없지만, 그 정갈한 마음 만큼은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도 않는지 맑은 하늘처럼 되살아난다. 


4미터가 넘는 굵은 감나무가지가 뚝뚝 잘려 나가서 널부러져 있고, 익지도 전에 떨어진 푸른 대봉감에는 햇살이 닿아서 윤기가 돈다. 가을 단풍이 물들기도 전에 떨어진 푸른잎들이 부러진 잔가지와 함께 여기저기 수북하다. 거듭 빗자루로 쓸어 담아서 나무 아래로 가서 부어주었다. 단풍이 물들기도 전에 떨어진 잎들이지만, 세월 속에서 흙과 섞이어 좋은 거름이 될 줄 알기에 나뭇잎들은 마음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어수선한 나뭇잎을 쓸어 나무 아래로 돌려보내고, 쓰러진 자전거들을 일으켜 세우고, 날아간 복순이 집 지붕을 다시 씌워주고, 대문 밖에 종이와 플라스틱 쓰레기와 엉킨 잎과 풀도 쓸어서 쓰레기 봉투에 담고, 내친김에 쥐똥나무 가지치기도 해주었다. 이 모든 과정을 평온한 숨으로 한 걸음씩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어수선함과 오물을 치우는 마음이 한결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비록 허리와 어깨는 무거워도 마음에는 새로운 기운이 돋아나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이다. 


태풍 마이삭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본 우리집의 미약한 피해에 비하면, 그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보신 분들을 생각하다 보면, 한순간도 마음이 높아질 수가 없다. 부디 회복 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가슴 가장 낮은 밑바닥으로 흐르는 평온한 마음을 기억하면서, 이 시기를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이 어수선함들을 수습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저녁이 되는지 마당에 그늘이 짙어진다. 좀 더 어두워지면 청소도 힘들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마당을 방안처럼 쓸고 닦은 날이다. 어수선했던 마음을 정리하는 일과 동떨어지지 않고자 숨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매 순간 깨어서 평온한 숨으로, 한 걸음씩 한 마음씩 한 호흡씩 내쉬고 들이쉬면서, 가슴이 텅빈 하늘로 채워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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