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4)
어느 수요일
광철 씨가 아프단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폐가처럼 썰렁한 언덕배기 집, 이미 집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잡풀이 수북이 자라 올랐고, 장마 물길에 패인 것이 그대로라 따로 길이 없었습니다.
흙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좁다란 방에 광철 씨가 누워있었습니다. 찾아온 목사를 보고 비척 흔들리며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야위었습니다. 퀭한 두 눈이 쑥 들어간 채였습니다.
이젠 학교에 안 가는 봉철이, 아버지 박종구 씨, 광철 씨, 좁다란 방에 둘러 앉아 함께 두 손을 모았습니다. 빨리 낫게 해 달라 기도하지만, 내 기도가 얼마나 무력한 기도인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의 몸살보다는 몸살이 있기까지의 어처구니없는 삶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방바닥에 그냥 놓인, 언제 가도 그냥 그 자리인 몇 개 그릇이 또 그대로이고, 그 옆 점심 찬이었지 싶은 간장 종지 하나 달랑 놓였는데, 그런 자리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조차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듬더듬 기도하고 도망치듯 돌아섰습니다.
그날 저녁, 수요예배를 거의 마칠 즈음 예배당 문이 열렸습니다. 보니 광철 씨였습니다.
예배당 뒷자리에 앉은 광철 씨가 두 손을 모았습니다. 가만히 무릎을 꿇고서.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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