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녘 참선방에서 쫓겨나다

신동숙의 글밭(247)


동틀 녘 참선방에서 쫓겨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앉을 자리가 어디인가 하고 찾다 보면, 예수가 이 세상에 머리 둘 곳 없다 하시던 말씀과 살포시 겹쳐집니다. 잠시 앉을 자리야 얼마든지 있지만, 제가 찾는 건 잠시 앉을 자리가 아닌 오래 앉을 자리입니다. 


오래 앉을 자리로 치자면 제 집도 오래 앉을 곳이 못 됩니다. 집안 살림이란 것이 있어서, 때가 되면 끼니를 챙겨야 할 자녀들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세탁 바구니엔 빨랫감이 쌓이고, 설거지거리가 쌓이고, 먼지가 쌓이고,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살림살이 속에서 과연 홀로 앉았는 일이란 널뛰기와 같습니다. 


차 한 잔을 우려내는 3분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았는 일도 일상 속 가족들에겐 게으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3분이 주는 심심함 그 너머의 고즈넉한 내면과의 조우란, 몸살림을 꾸려가느라 마음살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여기는 일상생활인들에겐 놓쳐버리기 십상입니다. 자기 자신의 본래 마음과 만나려는 한 마음만 내어도 이미 공부의 반은 된 것이라는 선사들의 말씀이 별빛 같습니다.


지난달에 친정 엄마와 함께 찾았던 가야산 해인사의 암자 희랑대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이 마음에 꽂혔습니다. '공부하다 죽어라' 그 한 말씀이 제 마음 중심에 번개처럼 대번 들어 앉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어느 선사의 입에서 나온 법문인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탄신 100주년을 맞이한 혜암 선사입니다. 혜암 선사는 성철 스님이 입적하신 후 한국 불교 제 6대 종정의 자리에 오르신 대선사입니다. 종정이란 불교 집안에서 제일 큰 어른이자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반가운 소식은 혜암 선사가 머물던 해인사의 원당암이 아주 오래 전부터 참선 도량의 터전을 닦아온 세월이 제 나이 만큼이나 오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원당암'에 대해서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날 석남사 마당에서 만난 어느 비구니 스님께, 일반인도 절에서 참선을 할 수 있는지 어렵사리 여쭈었더니, 석남사에선 출가를 하지 않으면 따로 참선을 할 수 없다 하시며 발걸음을 돌리시려다가, 넌지시 해인사의 원당암을 소개 시켜 주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들은 해인사 원당암은 잊어버리지 않으려 거듭 기억하고 있던 이름입니다. 


기도의 자리라면 교회와 성당도 있지만, 고독과 침묵 속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교회와 성당을 오랫동안 찾았으나 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만약에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제게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혼자서 하나님, 하느님, 첫 마음, 본래 마음, 성령을 만나는 자리가 저는 늘 그립습니다. 


진리의 구도자 석가의 수행 방편인 참선, 숨을 거두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 아바디'를 부르던 다석 류영모 선생이 칠성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드리던 침묵의 기도, 토마스 머튼이 강조한 관상의 기도, 예수가 무리를 떠나 홀로 산으로 오르시어 드리던 고독한 기도, 자기 자신을 밝히 비추는 명상 수행이 가리키는 하늘의 달은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그 손가락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내면을 향합니다.



선승들이 주장자로 땅을 내리치며 강조하듯, 고려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마음 심(心)자가 됩니다. 6천 년의 역사가 담긴 성경에선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마음을 지키라 하신 구약의 말씀과 고대 율법의 시대에 오신 예수가 마음으로 죄를 지어도 죄를 짓는 것이라며, 양심과 진리의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가시던, 그 본래 마음 자리를 가리키던 진리의 손가락들은, 매 순간 제 가슴으로 향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이미 가슴에 심겨져 있는 씨앗인 본래 마음 자리와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고독과 침묵의 참선 수행인 것입니다. 제가 참선을 하려는 이유입니다. 


유튜브로 혜암 스님의 법문을 찾아 들으니, 팔만대장경과 부처님 진리 말씀의 핵심은 '마음과 참선' 뿐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6개월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보다 잠시 머물러 앉았는 '관상의 기도'가 더 크다고 한 머튼의 목소리도 아울러 한 목소리입니다. '공부하다 죽어라'의 혜암스님 법문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 거듭 듣고 듣다 보니 두 주간의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싶어 혼자서 해인사 원당암을 찾았습니다. 


종무소 보살님이, 원당암에선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참선을 하고 있다는 말에, 드디어 내가 앉을 자리, 오래 앉을 자리를 찾았다 싶어 감사한 마음이 눈물처럼 일렁입니다. 20여 년 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요가를 가르칠 때에도 세상의 성공과 돈벌이보다 더욱 간절해지는 건 명상과 참선 공부였습니다. 요가의 몸수행인 아사나도 참선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26살에 버스를 타고 찾아간 해인사에선, 그 당시엔 소위 말하는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단 생각이 들어 또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참선의 자리를 찾아서 20여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서 드디어 찾아온 참선 도량 원당암엔 이미 어둑해진 저녁 산오름길에 피어 있는 흰색 분홍색의 반가운 한국 토종 코스모스가 고개를 숙일 줄도 모르고 웃고 있습니다.


저녁 공양을 하러 가라는 말씀이 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울산서 출발하기 전에 시험 준비로 독서실에 간다는 딸아이의 늦은 점심을 챙겨 주느라 함께 먹었던 밀면이 다음날까지 버텨줄 것이고, 코로나 19로 집안에 머물면서 이미 몸에 비축해 둔 영양분도 충분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물도 필요 없겠다는 생각에 물통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가야산의 원당암은 산을 깎아 터를 닦은 수도승들의 수도 도량입니다. 가파른 산길이 어릴적 폴짝폴짝 산새처럼 뛰어 오르던 까꼬막을 닮아 돌층계를 오르는 발걸음이 정겹습니다. 


조심스레 들어선 커다란 참선방엔 커다란 스크린으로 혜암 스님의 모습이 먼저 보이고 스님의 육성 법문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본래 마음을 밝히는 참선에 대해 이미 여러 번 새겨 들었던 말씀입니다. 이어서 방장 스님은 추석 뒷이야기와 코리나 19 안전 수칙에 대해서 거듭 당부하십니다. 방장 스님은 또한 이곳 참선 도량인 원당암의 참선방 활용에 대한 설명을 강조하십니다. 큰 선사들이 마련해 주신 이곳 참선 도량은 이곳에 산다고 주인이 아니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참주인이라는 방장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며, 눈을 감고 허리를 세우고 마음 편히 앉았습니다. 눈은 떠도 되지만, 감아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괘종 시계가 울릴 때마다 탁! 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푸느라 참선방 바깥 둘레를 돌며 포행을 하는 시간이 한 시간 간격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제겐 그 포행이 필요 없을 거 같았습니다. 반가부좌를 튼 두 다리에 번갈아가며 쥐가 내리면 발가락 끝을 살짝 움직이거나 포행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 대신 눈을 감고 앉은 채로 다리를 잠시 펼쳤다가 두 다리의 위치를 바꾸어 주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합니다. 일찌기 배운 요가 지식과 경험들이 좋은 약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법문 후 본격적으로 좌복에 앉은 밤 9시부터 끝나는 새벽 3시까지 그저 오래 앉아만 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그토록 원하던 꼼짝도 않고 고요히 깨어서 오래 앉아 있는 시간입니다. 


괘종 시계가 새벽 2시를 넘긴 이후부터는 죽비 내리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처음엔 그것이 죽비 소리인 줄 모르고 내심 놀랬으나, 이어지는 '탁탁 탁탁탁' 박자를 맞춘 소리에 이것이 말로만 듣던, 스님의 죽비 소리인 줄 알아차린 후 저는 눈도 뜨지 않고 여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얼추 제 주변의 제가수행자들이 모두 스님의 죽비 법문을 받은 것입니다. 벼락처럼 내리치는 죽비 소리는 가슴을 슬어내리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를 '내가 저 죽비를 받는 일은 없도록 단도리를 해야겠구나.'


괘종 시계가 세 번을 울리고, 스님이 뭔가를 탁! 치는 소리에 참선을 마치기로한 새벽 3시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고요한 제 주위로 좌복을 걷는 소리와 법복 바짓자락이 스치는 마른 바람소리와 조용히 머금듯 내쉬는 한숨 소리가 분주합니다. 그제서야 눈을 뜨고 보니, 스님이 "108배를 올릴 분은 올리시고...", 저는 속으로 잘 되었다 싶어서 좌복을 끌어다가 이제는 달마대사처럼 벽을 보고 다시 이어서 앉기로 하였습니다. 


호흡을 보면서 곧추 세운 허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매 순간 깨어서 화두인 '이뭐꼬'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단순한 듯 멈춘 시간은 내면에선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지만, 긴 날숨마다 길게 내려놓으며 비우며 천천히 깊이 들이마시며 그저 호흡과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일, 일어나는 안팎의 일을 알아차림으로 '이뭐꼬'의 화두를 놓치지 앉으려는 시간 밖의 시간이 유유히 흐릅니다. 일상을 벗어나 해가 뜨고 지는 이 세상의 하루 일 하고는 상관없이 고요히 앉았는 일을 비추어 봅니다. 


아까 본 참선방 맨 뒤에 커다랗게 붙여둔 혜암 선사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얼마나 고마운 얼굴인지, 이렇게 오래 앉았는 일의 터전을 마련해 준 법보시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저는 더불어 '하느님,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진리의 스승인 석가'를 마음으로 부르며 그분들이 하나같이 가리킨 이미 내 안에 있는 본래 마음과 만나는, 오늘처럼 고독과 침묵 속에 깨어서 바라보는 이 참선의 자리와 닿은 시절 인연이 그저 고맙고 감격스러워 새벽이 와도 일어날 줄을 모르고 앉았는 것입니다.


괘종 시계가 6번을 치면서 새벽 6시가 된 줄 알았습니다. 이대로 하루를 넘기고 이틀을 넘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뜬구름을 잡고 있는데, 갑자기 약간 성난 듯한 할아버지 목소리가 "보살님~" 저를 향하는 것 같아서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뜨고 돌아보니 머리를 기른 제가불자입니다. 절 살림을 챙기는 분처럼 보입니다. 불평의 말로 "불도 못 끄고 청소도 해야 되는데..." 나무라듯이 쏘아댑니다.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그 어디든 이 몸살림이 문제입니다. 그 말에 대꾸할 법문이 제겐 한 보따리가 있지만, 저는 비폭력 평화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한 마디 대꾸도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옮기는 발걸음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걷는 사람처럼 무겁기만 합니다. 동트는 줄도 모르고 너무 오래 앉아 있다가 참선방에서 쫓겨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세상의 눈으로 보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제 스스로를 비추어봅니다. 


스님들의 일화로 참선을 하다가 깜빡 졸아서 죽비로 맞고 바랑을 매고 쫓겨난 스님들 얘긴 들어봤어도, 참선방에서 오래 앉았는 일이 허물인 경우는 금시초문이라, 하지만 절 살림꾼에겐 살림거리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다가, 이야기로나마 들은 서슬퍼렇던 큰스님들의 가피와 죽비 소리가 그리운 마음까지 들면서 괜히 서러웁기도 하고... 유발 청년 시절 성철 스님의 일화가 가슴에 돌덩이처럼 맴돕니다.


대원사에서 수행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성철 스님의 이야기를 옮기자면, '젊었을 때 사상적으로 이리저리 헤메다가 불경을 보니까 아주 마음에 들더라 이거야. 그래서 참선하려고 대원사를 찾아갔지. 그때 대원사 탑전이 참 좋았어. 그래 거기 들어가 좀 있었지. 그런데 주지가 그걸 보고 펄쩍 뛰어. 본시 탑전이란 데가 스님들만 있는 곳이지 속인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한판 했지. 너거들은 절에서 처자식 거느리고 살림 다 살고 떡 장사도 하지 않느냐. 그러고도 중이냐. 내가 참선 공부 한다는데 웬 말이 많노. 절이 불교 공부 하는 곳이지 살림 사는 곳이가. 그런데 얼마 안 가 주지가 바뀌었지 젊은 중이 주지대리인가 뭐를 맡았는데 그 사람하고는 그래도 말이 통했거든 그래서 그 탑전에서 겨울을 보냈지.'


해인사의 백련암에서 숨을 거두시던 마지막 순간에도 상좌들에게 "참선 잘 하그래이" 하신 성철 스님과 해인사 원당암의 "공부하다 죽어라" 하신 혜암 스님과 "내가 가고 성령을 주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신 예수가 가리킨 본래 마음과 홀로 산으로 오르시어 하느님께 기도하시던 예수의 고독에 비추어, 참선방에서 해가 지는 줄도 뜨는 줄도 모르고 앉았는 일이, 다른 곳도 아닌 참선방에서 만큼은 크게 실례가 아니 되는 줄만 알고 있는 제 자신과, 머리카락이 희끗한 유발 처사님과는 바른 법을 주고 받을 만한 근기에까지는 스스로가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들이 물줄기처럼 이어집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제가 오래 앉을 자리가 참 없다는 생각이 다시 일어나려고 합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석가모니가 인도의 그 너른 카빌라 궁전을 나와서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았던 이유를, 예수의 발걸음이 사막을 향하고 무리를 떠나 홀로 산을 오르시던 이유를, 겟세마니 수도원의 수도승 토마스 머튼이 홀로 있기 위해 은둔처를 찾으려던 그 맑고 환한 하나의 마음이, 가야산 새벽 하늘 구름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늘 같습니다.  그나마 참선 수행 전에 들었던 원당암의 방장 스님의 말씀이 위안이 됩니다. '이 선방은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주인이 아니라 멀리서 왔더래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리고 겹쳐서 생각나는 저의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이야기입니다. 비좁은 방을 보면서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나 버릴 건 버리기로 하고 정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책꽂이 두 개만 남기고, 필요하지 않은 옷장도 치우고 책상도 치우고 대신 방바닥에 작은 상을 하나 놓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선, 앉는 자세가 중요하단 한 생각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문득 든 것입니다. 


제 방안에 혼자 앉아서 이래저래 자세를 바꾸어 가며 바른 자세를 잡아보다가, 턱! 비로소 몸이 중심을 잡고 앉은 모습이 바로 오늘의 참선 자세였습니다.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 제 앞에 있던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흠칫 놀란듯 저와 눈이 마주친 동생이 가부좌를 튼 누나의 모습을 슬쩍 보자마자 툭 내뱉은 한 마디가 "니 미칬나!" 그러면서 방문을 탕! 닫아버리던 기억과 오늘 새벽 흰머리의 유발 처사님의 벌컥! "청소해야 되는데, 불도 못 끄고" 한 마디가 겹쳐지면서 괜스레 가슴으로 새벽 가을 바람이 휘파람을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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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떠밀려야

한희철의 얘기마을(106)


어디까지 떠밀려야



어렵게 한 주일이 갔습니다. 작은 농촌엔 별다른 일도 드물어 그저 그런 일들이 꼬리 물 듯 반복되곤 했는데, 이번 주 있었던 두 가지 일들은 무척이나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봉철이가 퇴학을 맞았습니다. 막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한참 신나게 공부하고 뛰어놀 때인 중학교 1학년. 봉철이가 더 이상은 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며칠인지도 모르고 계속 결석을 했던 것입니다.


공부가 싫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봉철이는 아침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는 했습니다. 그걸 안 주위 분들이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하면서 노력했지만 끝내 봉철이 마음을 학교로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봉철이가 야단을 맞을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 아픈 데가 없지는 않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버지, 새벽같이 남의 일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서른 셋 노총각 광철 형, 그리고 더 없이 가난한 삶, 그 누구도 봉철이가 학교 가는 것을 챙겨줄 이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누나 민숙이가 있을 때는 둘이 어울려 재미있게 지냈는데, 민숙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미싱공이 되어 도시로 떠난 후 봉철이는 꼼짝없이 외톨이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랫작실 아저씨 한 분이 또 세상을 스스로 등졌습니다. 지난번 방안에서 목을 맨 벌할아버지에 이어 벌써 올해 두 번째 일입니다. 적은 양도 치명적이라는, 풀 태워 죽이는 제초제를 반병이나 마셨습니다.


올해 58세, 헝클어진 머리로 개울가를 서성이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함께 사는 며느리를 통해 본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 된 손주를 두고서 왜 세상을 등져야 했는지 그 마음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구질게 내리는 찬비 속 그분을 보내며 흠칫흠칫 닦아내는 마을 분들의 눈물 속엔 ‘모진 세월’이 있습니다. 쉽게는 헤아릴 길 없는 착잡함이 뭉뚝뭉뚝 배어났습니다.


어디까지일지요? 어디까지 떠밀려야 끝이 있는 것인지요? 점점 짙어오는 어둠의 그림자, 어디까지 쫓겨야 그나마 농촌의 아픔에 끝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막막함 속에 눈물과 분노밖엔 차오르지 않는 내가 그렇게 한심하고 무력해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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