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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어디까지 떠밀려야

by 한종호 2020. 10. 6.

한희철의 얘기마을(106)


어디까지 떠밀려야



어렵게 한 주일이 갔습니다. 작은 농촌엔 별다른 일도 드물어 그저 그런 일들이 꼬리 물 듯 반복되곤 했는데, 이번 주 있었던 두 가지 일들은 무척이나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봉철이가 퇴학을 맞았습니다. 막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한참 신나게 공부하고 뛰어놀 때인 중학교 1학년. 봉철이가 더 이상은 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며칠인지도 모르고 계속 결석을 했던 것입니다.


공부가 싫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봉철이는 아침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는 했습니다. 그걸 안 주위 분들이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하면서 노력했지만 끝내 봉철이 마음을 학교로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봉철이가 야단을 맞을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 아픈 데가 없지는 않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버지, 새벽같이 남의 일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서른 셋 노총각 광철 형, 그리고 더 없이 가난한 삶, 그 누구도 봉철이가 학교 가는 것을 챙겨줄 이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누나 민숙이가 있을 때는 둘이 어울려 재미있게 지냈는데, 민숙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미싱공이 되어 도시로 떠난 후 봉철이는 꼼짝없이 외톨이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랫작실 아저씨 한 분이 또 세상을 스스로 등졌습니다. 지난번 방안에서 목을 맨 벌할아버지에 이어 벌써 올해 두 번째 일입니다. 적은 양도 치명적이라는, 풀 태워 죽이는 제초제를 반병이나 마셨습니다.


올해 58세, 헝클어진 머리로 개울가를 서성이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함께 사는 며느리를 통해 본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 된 손주를 두고서 왜 세상을 등져야 했는지 그 마음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구질게 내리는 찬비 속 그분을 보내며 흠칫흠칫 닦아내는 마을 분들의 눈물 속엔 ‘모진 세월’이 있습니다. 쉽게는 헤아릴 길 없는 착잡함이 뭉뚝뭉뚝 배어났습니다.


어디까지일지요? 어디까지 떠밀려야 끝이 있는 것인지요? 점점 짙어오는 어둠의 그림자, 어디까지 쫓겨야 그나마 농촌의 아픔에 끝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막막함 속에 눈물과 분노밖엔 차오르지 않는 내가 그렇게 한심하고 무력해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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