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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2

사과를 깎아 먹는 일과 詩 신동숙의 글밭(255) 사과를 깎아 먹는 일과 詩 사과를 처음으로 스스로 깎아 먹었던 최초의 기억은 일곱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녁 무렵 작고 여린 두 손으로 무거운 사과를 거의 품에 안다시피 받쳐 들고서, 언덕처럼 세운 양무릎을 지지대 삼아, 오른손엔 과도를 들고 살살살 돌려가며 한참을 씨름하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한참을 사과와 과일칼과 씨름하며 그리고 엉성하게나마 다 해내기까지 앞에 앉아 숨죽이고 있던 엄마가 환하게 웃으시며 박수를 쳐주었던 기억이다. 그때부터 스스로 사과를 깎아먹는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책임감의 문제도 그때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후에 감당해야 하는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날카롭고 겁나는 과도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칼끝이 함께 둘러앉은 누군가에게.. 2020. 10. 14.
상처 한희철의 얘기마을(114) 상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힘든 일이지 싶어 저녁 어스름, 강가로 나갔다.모질게 할퀸 상처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널따란 강가 밭, 기름진 검은 흙은 어디로 가고 속뼈처럼 자갈들이 드러났다. 조금 위쪽에 있는 밭엔 모래가 두껍게 덮였다.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아물 길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들.한참을 강가 밭에 섰다가 주르르 두 눈이 젖고 만다. 무심하고 막막한 세월.웬 인기척에 뒤돌아서니 저만치 동네 노인 한분이 뒷짐을 진 채 망가진 밭을 서성인다.슬그머니 자릴 피한다.눈물도 만남도 죄스러워서. - (1991년) 2020.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