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55)
사과를 깎아 먹는 일과 詩
사과를 처음으로 스스로 깎아 먹었던 최초의 기억은 일곱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녁 무렵 작고 여린 두 손으로 무거운 사과를 거의 품에 안다시피 받쳐 들고서, 언덕처럼 세운 양무릎을 지지대 삼아, 오른손엔 과도를 들고 살살살 돌려가며 한참을 씨름하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한참을 사과와 과일칼과 씨름하며 그리고 엉성하게나마 다 해내기까지 앞에 앉아 숨죽이고 있던 엄마가 환하게 웃으시며 박수를 쳐주었던 기억이다.
그때부터 스스로 사과를 깎아먹는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책임감의 문제도 그때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후에 감당해야 하는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날카롭고 겁나는 과도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칼끝이 함께 둘러앉은 누군가에게로 향해서 무심코 놓이지 않도록 놓는 위치와 방향을 잡는 일. 그리고 누구도 서운하지 않도록 깎은 사과를 공평하게 자르는 일. 독이 있는 씨앗을 도려내는 일. 적당한 양의 접시를 고르는 일.
야외에서 포크를 준비 못했을 땐, 주위에 적당히 단단한 나뭇가지라도 뚝 끊어서 깨끗한 집기로 만들어 내어야 하는 일. 먹고 남기지 않을 정도로 양을 조절하며 남은 사과 뒷처리와 껍질은 마당에 묻을지 음식물 쓰레기통에 담아낼지 하는 많은 일들이 내게 주어졌다.
옛어른들은 복 달아난다 하시며, 포크 대신 이제 막 자른 과일칼로 사과를 찔러서 입에 넣지 않도록 나와 상대방에게까지 그러지마라고 단속하는 일. 조심한다 하면서도 여린 살을 칼 끝에 베었던 기억들이 아물기를 수없이 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다 해야하는 일들.
가끔은 사과 껍질이 끊어지지 않도록 묘기를 부릴 때면 호흡이 명상에 가까워지기도 했으니, 사과 한 알 깎아 먹는 일이 알고보면 단순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가 어린 나에게 무거운 사과와 과도를 믿고 맡긴 일처럼, 나에게 시와 글을 맡긴 그분의 마음이 울엄마의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을 더듬어보곤 한다.
날카로운 글 끝이 어느 한 생명으로도 무심코 놓이는 일이 없도록 살피는 일. 글 안에서 어느 한쪽으로든 치우치지 않도록 조화롭고 공평하게 가치를 나누는 일.
내 속에 독을 걷어내는 일. 때로는 무거운 글감을 몇 년이고 속에 담고서 익을 때까지 가슴으로 품고 살아가기도 해야하는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새콤달콤한 사과 한 알을 맛있게 나누어 먹기까지, 시 한 편 맛있게 나누기까지,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하는 깊고 세심한 사유가 수반되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내게 사과를 스스로 깎아 먹는 일과 시를 적는 일은 이처럼 다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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