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면 안 돼!

한희철의 얘기마을(123)


죽이면 안 돼!



때론 개미만 보아도 “엄마야!” 하며 기겁을 하던 소리가 주일 저녁예배 시간, 무슨 담력이 어디서 났는지 예배당에 들어 온 파리를 발을 번쩍 들어 밟으려 했다.]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왔던 다섯 살 준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만 눈이 휘둥그레져 하는 말,


“죽이면 안 돼, 걔네 엄마가 찾는단 말이야.”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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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각각 세상

한희철의 얘기마을(122)


제 각각 세상


물난리 지나간 뒷모습은 참으로 참담했다. 강가를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 기름지고 널따란 밭들은 이미 밭이 아니었다. 김장 무, 배추, 당근 등 파랗게 자라 올랐던 곡식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수북한 모래가 그 위를 덮고 있었다. 


흙이 다 떠내려가 움푹 파인 자리에 흰 뼈처럼 돌들만 드러난 곳도 적지 않았다. 미끈하게 자라 올랐던 미루나무들도 어이없이 쓰러져선 깃발처럼 폐비닐만 날리고 있었다. 쉽게는 치유되지 않을 깊은 상처였다.


부론에 다녀오다 보니 강가를 따라 난 도로변에 웬 차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수해복구의 손길이 이곳까지 미쳤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차창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아 내다보니 웬걸, 강가 그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돌 줍는 사람들이었다.


큰 장마가 지나가고 더군다나 밭도 뒤집혀 숨어있던 돌들까지 드러났으니 돌 줍는 사람들로서야 얼마나 호기랴, 이때를 놓칠 새라 죽음 있는 곳 독수리 몰리듯 몰려든 것이었다.


돌 줍는 고상한 취미를 탓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만 물난리로 농사 망치고 다시 시작해야 할 농사도 어렵지 싶어 겹시름에 잠긴 농부들을 두곤 자가용 타고 와 돌이나 줍는 일은 취미 아닌 추태였다.


돌짝밭으로 변해버린 밭을 예쁜 돌 찾아 밟을 때 거기 자갈처럼 누운 농부들 마음 함께 밟는다는 걸 그들이 짐작할 턱이 있겠는가?



지난 주 수원에 갔을 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공장지대에서 어렵게 목회하고 있는 친구였다. 친구는 제법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수재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교우들끼리 모은 헌금이라고 했다. 나도 잘 아는 그 교회 형편에 비해선 상당한 액수였다.


사글세방에 살고 있는, 역시 작지만 물난리를 함께 당한 어떤 부부는 농사거리 잃은 단강 소식을 듣곤 결혼반지를 꺼내 바쳤다. 결혼반지를 받고는 밤잠을 못 이룬 친구가 다음 말 반지를 돌려주러 갔을 때 기쁨으로 드린 것이니 정성으로 받으시란 말만 들어야 했다. 반지는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어려움은 지금 당장 나누지 않으면 할 수 없지 않느냐 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목젖을 뜨겁게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교우들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어쩜 세상은 이렇게도 제각각인지.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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