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

한희철의 얘기마을(140)


창(窓)




단강에서 사는 내게 단강은 하나의 창(窓) 

단강을 통해 나는 하늘과 세상을 본다. 


맑기를

따뜻하기를, 

이따금씩 먼지 낀 창을 닦으며 그렇게 빈다. 


하늘을 닦는 것, 

세상을 닦는 것, 

맑고 따뜻해 깊은 하늘을 맑게 보기를, 

넓은 세상을 따뜻하게 보기를, 

오늘도 나는 나의 창을 닦으며 조용히 빈다.  


-<얘기마을>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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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신동숙의 글밭(272)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빈방은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때의 푸른 설레임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텅 비었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비우면 비울 수록 충만해져 오는 이치입니다. 


빈방은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순수한 본성을 닮았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본성은 또한 맑은 가을 하늘을 닮아 있는 크고 밝은 하늘의 무진장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빈방을 본 것은 언양 석남사 한 비구님 스님의 방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단풍이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친구가 구했다는 흑백 필름 사진기로 추억 여행 사진을 담으려 둘이서 버스를 타고서 친구의 이모 스님이 출가한 곳이라는 언양 석남사를 처음으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한 행복한 추억이 많은 박정민 친구는 그때부터도 영상에 관심이 많았는지 졸업 후 PD가 되었습니다. 요즘도 '우리말 겨루기' 방송을 담당하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해집니다.


낯설어 하는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는 비구니 스님의 안내로 들어선 이모 스님의 빈방에는 벽장문이 하나, 낮은 탁자 하나, 방석 하나가 놓여진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보는 빈방이 주는 그 홀가분함이 제 마음에는 얼마나 좋았던지 점잖게 앉아 있는 친구 곁에서 저 혼자서 마구 좋아라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빈방을 처음 본 그때 그 시절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려니 그때의 설레임과 충만감이 그대로 되살아나려고 합니다.


관상의 기도를 해오면서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빈방과 하늘은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닮았다는 점입니다. 마음의 방에서는 침대도 책상도 옷장도 옷가지들도 숟가락 하나도 필요 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흔히 어른들이 얘기하시는 다음 세상으로 건너갈 때에는 이곳에서 일군 재산과 사람과 그 어떠한 물질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 우리네 인생인 것처럼, 관상의 기도 속에서 만나는 제 마음의 빈방에는 언제나 아무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빈방을 대할 때면 알 수 없는 설레임으로 충만해져 오던 이유가 우리 본래의 마음을 대하여 바라보는 일과 닮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빈방과 함께 생각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성 프란치스코, 월든 오두막의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 다석 류영모 선생님, 법정 스님,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둘레를 보다 소박하고 간소하고 단순하게 비우고 덜어냄으로 누구보다 풍요롭고 충만한 내면의 뜰을 가진 이들입니다. 


어쩌면 그 만큼 내면이 충만했기에 저절로 눈에 보이는 삶의 둘레와 살림의 가짓 수를 줄여 나가며, 간소함과 단순함으로도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커다란 하늘과 광활한 땅, 그 커다란 하늘 품에 안기어 언제나 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일이 제가 드리는 관상의 기도입니다. 언제나 온유한 그 커다랗고 밝은, 빈방을 닮은 하늘은 하느님이 살짝 보여주시는 하느님 얼굴의 일부분인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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