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본능, 흙구슬 빚기

신동숙의 글밭(307)


둥근 본능, 흙구슬 빚기



밥숟가락 놓고 달려가던 모래 놀이터

좁다란 골목길을 돌면 활짝 나오던 둥근 놀이터


나에게 모래가 황금빛 아침햇살이라면

모래에게 나의 얼굴도 아침햇살 


손끝이 아무리 시려워도

나중엔 손이 시려운 줄도 모르고


거북이 등딱지처럼 튼 피가 맺히던 손등

그런 두 손등을 마주 부비며 문지르던


모래만 보면 가슴에서 살아나는 둥근 본능

흙구슬 빚기


놀이터 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온 정성을 기울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굴리고 굴리고 굴리던 흙구슬


부스러지지 않도록

누군가 모르고 밟고 지나는 일 없도록


어느모로 보나 둥글도록

두 손바닥 사이에서 태어나던 흙구슬


하지만 이내 으스러지기 일쑤

언제나 아쉬움만 남기던 꿈의 둥근 세상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빚어놓은 투명하게 둥근 이슬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던 날


감탄하며 그 작고 아름다운 둥근 세상에 흠뻑 빠져

지금도 헤어나오지 못하여 오늘을 살아간다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이 세상 눈물 흘리는 곳마다 

두 손 모아


오늘도 투명하게 

둥근 세상을 빚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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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옥수수

한희철의 얘기마을(197)


거룩한 옥수수



추석 전날 작실속 속회를 이서흠 성도 댁에서 모였다. 차례도 그렇게 됐지만 특별히 이서흠 성도님이 원하였던 일이다.


울퉁불퉁 온통 자갈이 깔린 길, 윗작실까지의 길은 멀기도 멀고 쉽지도 않았다. 그 길을 걸어 예배당을 찾는 정성을 헤아리며 작실로 올랐다. 


예배를 마쳤을 때 이서흠 성도님은 시간을 맞춰 쪄놨던 옥수수를 내 오셨다. 잘 익은 찰옥수수였다. 옥수수 철이 지난 지 한참일 텐데 그 때까지 옥수수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알고 보니 추석 때 식구들 모두 모이면 쪄 주려고 일부러 때를 늦게 정해서 옥수수를 심었던 것이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삶의 모든 시간 속에 빈틈없이 배어있는 어머니의 지극한 배려. 옥수수를 베어 무는 마음이 문득 거룩해진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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