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순례 여정을 시작하며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막 1:12-13)

주님이 은총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사순절 순례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긴 여정이지만 차분하고 꾸준한 발걸음으로 십자가의 신비에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절과 함께 우수 절기가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날이 매우 차갑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추위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지나갈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음 사이로 눈석임물이 흐르고, 나뭇가지에 연록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책상 위 성경 옆에 김영래 시인의 <사순절>이라는 시집을 가까이 두고 마흔 편의 시를 하나씩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진 않지만 세상의 순환과 거듭남을 노래하는 멋진 시입니다. 그 두 번째 시에서 시인은 봄의 설렘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굴레를 씌우지 않은 망아지가 껑충껑충 뜀을 뛰다가
기쁨에 겨워 방귀를 뀐다.
성급한 봄.
망아지 같은 봄.”


봄을 망아지에 빗대는 이 놀라운 상상력을 따라가 보십시오. 봄을 처음 경험하는 망아지는 풀이 자라 오르는 속도에 놀라고, 꽃이 지는 기척에도 화들짝 놀라 머리를 흔들며 발길질을 합니다. 이때의 놀람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명 혹은 활기를 동반하는 감정입니다. 시인은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는 망아지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차라리 내가/저 벌룽거리는 젖은 콧구멍으로 들고나는/바람이었으면.” 이 마음 알 것 같지 않습니까? 모든 게 낡아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늙음의 징후인지 모르겠습니다.


봄의 활기는 우리 시선을 밖으로 향하게 만들지만, 사순절은 우리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시선은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밖에서도 안으로 난 길을 볼 수 있고, 안에서도 밖으로 난 길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은총처럼 주어진 삼감의 시간을 통해 우리 눈이 더욱 맑아지고 깊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절은 우리 삶을 뿌리에서부터 성찰하라는 일종의 초대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참 열심히 삽니다. 요구되는 일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우리 삶을 이끌어갑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유능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무능하다는 말, 불성실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에 피로가 켜켜이 쌓입니다. 누적된 피로는 우리에게서 타인을 위한 여백을 앗아갑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냅니다. 열심히 살면서도 산만한 것이 우리 실상입니다. 산만한 이들은 늘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핍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합니다. 타인들의 반응에 따라 감정의 부침을 겪기에 늘 불안해합니다. 


물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강자라 여기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건 당당함이 아니라 무례함입니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특권이 곧 자기의 인격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침묵해야 할 때도 말하고, 배워야 할 때도 가르치려 합니다. 그는 가장 큰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만함의 포로일 뿐입니다. 자기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한 듯 보여도 실패자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타인이란─당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형제가 됨으로써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으로 결합해야 할 사람, 당신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보편적 구원의 행진에 참가하고자 한다면, 사랑으로 결합해야 할 사람. (중략) 타인이란─창조 사업을 완성시키려는 노력에 당신이 협조해야 할 사람, (중략) 타인이란─아버지께로부터 보내어진 사람, 또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요청, 타인이란─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사람”(미쉘 꽈스트, <참 삶의 길>, 조철웅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p.127)


사순절을 지나는 동안 이웃과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근본으로부터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경쟁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번 넘어지면 영원히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조바심 속에서 살아갑니다. 실패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사람은 자기의 능력으로 얻은 과실을 한껏 누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패배자들의 서러움과 눈물은 보려 하지 않습니다. 


1966년에 가수 김용만 씨가 불러 히트했던 ‘회전의자’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사람 없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사랑도 젊음도 마음까지도/가는 길이 험하다고 밟아버렸다/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지금도 환청처럼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위 능력주의가 당연한 공리처럼 여겨지는 살벌한 세상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러한 능력주의 신화가 우리에게 앗아가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둘째는 다른 이들을 공동 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샌델은 성공에 집착하는 이들의 마음의 풍경을 이렇게 그립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에는 저항하는 한편, 우리는 스스로 성공했고 따라서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노력과 재능에 대해 사회체제가 부여하는 보상이 아무리 크든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에는 환호하는 일은 놀랍지 않다.”(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p.109)


이런 마음이기에 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사정에 둔감합니다. 바닥에 묶여 있는 사람들 혹은 물 밑으로 가라앉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들이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외부로부터 주어진 가능성, 기회, 행운, 재능 혹은 천분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이라야 성숙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애초에 세례를 받고 입교하려는 이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 구별된 시간이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옛 삶에 대해 죽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의식입니다. 그렇기에 엄격하고 신중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경건생활에 매우 소중한 세 가지를 몸과 마음에 새기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기도, 금식, 자선이 그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청하여 얻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음으로 삼고 우리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기도는 세상의 인력에 속절없이 이끌리던 우리 마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금식은 일단 음식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전통은 사순절 기간 동안 육식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의미의 금식은 우리 영혼의 허깃증을 끊임없이 뭔가로 채우려는 갈망에 저항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침묵은 말의 금식입니다. 친절함은 지배하려는 마음의 금식입니다. 외적인 금식을 하면서도 남들과 다투고,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을 빙자한 위선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당신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사58:6)


그뿐이 아닙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떠돌이를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보면 옷을 입혀주는 것이 진정한 금식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도 이런 금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선은 이웃들과 좋은 것을 나누며 삶을 함께 경축하려는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시혜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혜자 연하는 순간 도움을 받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굴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것을 나눠주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잘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이런 삶을 연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절 순례의 여정 중에 주님과 동행하면서 경험한 기쁨과 깨달음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곤고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분의 앞길을 은총의 빛으로 환히 밝혀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2월 18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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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법



'요즘 나는 눕기보단 쓰러지는 법을 배웠다'고 한 이는 시인 황동규였을 게다. 

 


그는 어떤 경험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짧은 말 한마디로 표현되는 어려운 경험.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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