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걷는 게



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썰물이 되면 나타나는, 바닷가 갯벌에 사는 흔한 게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생각지 않은 것을 혼자 생각하면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우린 왜 옆으로 걸을까. 앞으로 걸을 순 없는 걸까?’

 

그는 앞으로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옆으로 아니라 앞으로야.’


맘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여 마신 후 조심스레 발을 뻗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떨렸습니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참고 다른 한 발을 마저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발은 옆으로 가 있었습니다. 처음이니까 그렇겠지 하며 다시 한 번 해 보았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뿐 발은 옆으로 갔습니다. 몇 번을 더 해보았지만 때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옆으로 갈 뿐이었습니다. 무리하게 힘을 써서인지 뼈마디가 쑤셨습니다.

그가 무엇을 연습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다른 게들이 그를 놀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연습하려 했지만 결국은 모두가 알게 되고 말았습니다. 바람도 갈매기도 알았으니까요. 바보같이 이상한 모습으로 뒤뚱거리는 그를 깔깔 웃어대며 둘러싸기도 했고, 괜히 혼자 잘난 체 한다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나이 많은 게들은 그를 나무랐습니다. 옆으로 걷는 것이 게의 올바른 걸음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걸으려는 건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며 되바라진 것이라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볕을 피해 모두들 자기 집으로 들어간 한낮, 그는 갯벌에 혼자 남아 연습을 했습니다. 때론 모두가 잠든 밤 혼자 깨어 일어나 밤하늘별을 벗 삼아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두 눈을 집 밖으로 내밀고 구경하던 것도 한 때. 이젠 모두들 무관심해지고 말았습니다.

짧지도 쉽지도 않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마침내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앞으로 걷게 된 것입니다. 모양이 어색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는 분명 앞으로 걸었습니다. 처음엔 한발씩 앞으로 내디딘 후 몸뚱이를 힘들게 끌어 당겼지만, 이내 익숙해져 두 발을 쑥 앞으로 내밀곤 내딛은 두 발에 힘을 주어 몸을 가볍게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놀라지 않은 게들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모두들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을 그가 마침내 해내고만 것입니다. 언제 놀림 받았느냐 싶게 그는 갯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모든 게들이 한결같이 그를 칭찬했습니다. 활동의 폭을 넓혔노라고 나이 많은 게들도 칭찬했습니다. 그의 주위엔 많은 게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앞으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게들이 그를 자기 집에 초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동안의 수고도 달래주며 앞으로 걷게 된 장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옆으로 기어서 들어갈 수 있을 뿐. 앞으로 걸어서는 다른 게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낮에는 그럭저럭 다른 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었지만 밤이 되면 그는 혼자 자기 집에 들어가 홀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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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강병규 화가의 돌그림)




숲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산새 소리에 새벽잠을 깨우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집

나무와 나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내려앉는 집

월든 숲속 소로의 오두막
법정 스님의 오두막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
초의 선사의 일지암

다산 초당
초가집과 막사발과 박꽃

그곳에서 
나뭇가지 줏어 모아

불을 때서 밥 해먹고
입던 옷 기워 입고

침묵으로 밭을 일궈
진리의 씨앗 한 알 품고서

없는 듯 있는 
바람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오두막에서 맞이하는 저녁

그 이상을 꿈꾸어 본 적 없이
어른이 되었는데

지금 내 둘레엔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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