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맞이하는 기도

그림 : 강병규 화가

 

 

선선한 가을 바람, 익어가는 강아지풀 
한여름 무더웠던 마음까지 적셔주는 빗소리

돌담 위로 대문 위로 목련나무 위로 
밤하늘로 오르려는 새하얀 박꽃

어둔 밤하늘에 드문드문 하얀 별
숨어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 

들숨날숨
아, 살아있음 

그리고 하늘과 이 땅에 펼쳐 놓으신
무수한 아름다움 차고도 넘쳐 

눈을 어디서부터 두어야 할 지 
무엇부터 담아야 할 지 

매번 알지 못하여 순간 길을 잃을 때면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눈을 감습니다

순간의 새로움으로 또다시 맞이하는
설레임과 흔들림으로 시작하는 오늘

새로운 오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새로운 마음 뿐임을 놓치지 않으려

오늘도 거져 주신 하루에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태초의 고민인 듯 거듭 새로이 생각하는 하루입니다

기뻐하는 오늘
감사하는 오늘
기도하는 오늘

제 작은 가슴에 일렁이는 이 아름다움들이 끊이지 않고
넘쳐 흘러 마르지 않는 기도의 강으로 흘러 처음으로

오늘은 내려주신 사랑이요
거저 받은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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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한 숙제


학생부 토요모임,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모두 열 명이 모였다. 백지 앞에 서서 감히 붓을 들지 못하고 마침내 울고 만다던, 그런 때가 종종 있다던 어느 노화가의 고백이 생각난다.


나도 지금은 백지 앞에 선 것이다. 맨 처음 시작한다는 것의 가슴 떨림, 성경을 공부한 후 탕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서 돌아오오’ 찬송을 가르친다.


‘어서 돌아오오’ 몇 번을 반복하지만 자꾸만 그 부분이 틀린다. 그래, ‘어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지금은 비록 어린 나이에 이 노래를 배우지만 언젠가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혹 잘못된 길 멀리 떠날 때 ‘확!’ 뜨겁게 이 노래가 되살아오기를. 잘못된 길로 가는 발목 와락 붙잡을 수 있기를.

예배를 마치고 부활절을 준비했다. 둘러앉아 삶은 계란에 ‘축 부활, 예수 다시 사셨네’라 쓰기도 하고 물감을 들이기도 했다.


순님이와 은경이는 ‘축 부활’이란 글자를 제단에 써 붙이기로 했다. 껍질을 깨고 병아리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 신비로운 변화가 우리에게도 허락되기를.

그럴듯한 이 말이 참으로 막연한 말임을 안다. 또 그것이 내게 주어진 엄한 숙제임을 안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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