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



쉽게 생각했던 토끼도 이젠 잔뜩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점점 포위망이 좁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울 방학 중 임시 소집일을 맞은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눈 쌓인 뒷산으로 올라 토끼몰이에 나선 것입니다.


몽둥이를 든 아이에 깡통을 두드리는 아이, 산을 빙 둘러 몰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구경하듯 느긋하던 토끼가 아이들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행동이 빨라지자 차츰 당황하게 된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에 놀라 저쪽으로 도망가면 “와!”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막아섰고, 이쪽으로 뛰면 기다란 작대기를 든 아이들이 막아섰습니다.


이리 뛰고 자리 뛰고 하는 사이에 산을 에워싸던 아이들의 원은 점점 좁혀들었고, 그제야 토끼는 자기가 위태로워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간 게 종대 앞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토끼를 잡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상부 주장을 맡고 있는 종대는 누구보다도 몸이 빠른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었던 종대는 토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쓰러지며 토끼를 덮쳤지만 토끼가 그 틈을 살짝 피해 산 저쪽으로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종대는 눈만 한 아름 안고 일어섰습니다.

허탕치고 내려오는 길, 토끼 놓친 걸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종대만은 달랐습니다. 자기에게로 달려온 토끼를 마주했을 때, 잠깐이긴 했지만 종대는 토끼의 두 눈을 본 것인데, 잔뜩 겁에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토끼의 두 눈이 그렇게도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까짓 맘만 먹었다면 지친 토끼를 잡는 것은 종대에겐 쉬운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순 없었지만 종대의 마음은 여간 흐뭇하질 않았습니다. 일부러 한 자신의 실수가 토끼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다 잡은 토끼 놓쳤다고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까지 아쉬워했지만 그럴수록 종대의 흐뭇함은 더했습니다. 흰 눈에 덮인 학교 뒷산 상자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할 뿐이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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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소맷자락



트실트실 튼 소맷자락
엉긴 나무 톱밥이 귀여워서 

모른 척하며
슬쩍슬쩍 눈에 담았다

목수의 소맷자락은
찬바람에 코를 훔치지도 못하는 바보

트실트실 반 백 살이 되는
나무 문살 백 분을 떠안기며

돌아서는 저녁답에
톱밥 같은 눈물을 떨군다

아무리 눈가를 닦아내어도
아프지 않은 내 소맷자락이 미안해서

오늘 보았던
그리고 어릴 적 보았던

트실트실 흙과 풀을 매던 굽은 손들이
나무 껍질처럼 아름다워서 

경주 남산 노을빛에 기대어 
초저녁 설핏 찾아든 곤한 잠결에 

마음에 엉긴 톱밥들을 하나 둘 헤아리다가
오늘도 하루가 영원의 강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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