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040

길을 잃으면 땅에서 길을 잃으면 저 위를 바라본다 동방박사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면서 이 땅에 내려오신 어린 왕을 찾아가던 사막의 밤길처럼 하늘 장막에 써 놓으신 그 뜻을 읽으려 밤낮 없이 바라본다 그러나 저 하늘이 가리키는 곳은 언제나 내 안으로 펼쳐진 이 커다란 하늘이었다 숨줄과 잇닿아 있는 나의 이 마음이다 마음대로 행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다는 그 마음 날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든 새로운 길들을 비춘 마음속 하늘 2021. 10. 3.
속장님에겐 눈물이 기도입니다 새벽 세시 넘어 일어나 세수하면 그나마 눈이 밝습니다. 성경 몇 줄 읽곤 공책을 펼쳐 몇 줄 기도문을 적습니다. 머릿속 뱅뱅 맴돌 뿐 밖으로 내려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 서툰 기도 몇 마디, 그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두 방울 물 받듯 적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그걸 모아야 한 번의 기도가 됩니다. 흐린 눈, 실수하지 않으려면 몇 번이고 읽어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때마다 흐르는 눈물. 옆에서 자는 남편 놀라 깨기도 하고, 몇 번이고 눈물 거둬 달라 기도까지 했지만 써 놓은 기도 읽기만 해도 흐르는 눈물, 주체 못할 눈물. 실컷 울어 더 없을 것 같으면서도 기도문 꺼내들면 또 다시 목이 잠겨 눈물이 솟습니다. 안갑순 속장님의 기도는 늘 그렇게 준비됩니다. 다음 주 속장님 기도입니다, 알려드리면 한 주일은.. 2021. 10. 2.
무심한 비는 그칠 줄 모릅니다 찬비가 종일 내리던 지난 주일은 윗작실 이한주 씨 생일이었습니다. 이하근 집사의 아버님이신 이한주 씨가 73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양말을 포장하여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집 뒤론 산이 있는, 윗작실 맨 끝집입니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마을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들고 있었습니다. 상을 따로 차리신다는 걸 애써 말려 같이 앉았습니다. 비만 아니었다면 모두 들에 나갔을 텐데 내리는 비로 일을 쉬고 모처럼 한데 모인 것입니다. 비꽃이 피듯 이야기꽃이 피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장에 다녀온 얘기하며 비 맞아 썩고 싹이 나고 하는 곡식 얘기하며, 몸 아픈 얘기하며. 그중 치경 씨 얘기엔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바로 그날, 어릴 적 식구들과 흩어져 소식이 10년 넘게 끊겼던 치경 씨.. 2021. 10. 1.
문향(聞香) 하얀 박꽃이 더디 피고 하얀 차꽃이 피는 시월을 맞이하며 하얀 구름은 더 희게 푸른 하늘은 더 푸르게 무르익어가는 이 가을 하늘이 먼 듯 가까운 얼굴빛으로 다가오는 날 들음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하늘문을 그리며 문향(聞香) 차꽃의 향기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올해도 감사히 모든 꽃들이 제 향기를 내뿜을 수 있음은 꽃들을 둘러싼 없는 듯 있는 하늘이 늘 쉼없는 푸른 숨으로 자신의 향기를 지움으로 가능한 일임을 2021.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