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잎 구멍 사이로

 



초저녁 노을빛을 닮아가는 가을잎
겹겹이 구멍 사이로 하늘이 눈부시다

흙으로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으려는 듯
한결 느긋해진 한낮의 바람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발아래 드리운 
잎 그림자와 빛 그림자를 번갈아 보다가

어느 것이 허상인 지 
어느 것이 실체인 지

사유의 벽을 넘나들다가
겹겹이 내 마음의 벽도 허물어진다

허물어져 뚫린 구멍 사이로
하늘이 들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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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 학교가 파하자마자 우리는 월암리로 갔다. 작은 고개 큰 고개 제법 높은 고갤 두 개 넘어야 친구네 집이었다. 


친구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가지, 타래박, 양동이, 삽, 채 등을 챙겨 들고 논으로 갔다. 웅덩이를 푸기로 했던 것이다. 우린 그러길 좋아했다. 산 쪽으로 붙어있는 포도밭 아래 제법 큰 웅덩이였다.


조금씩 줄어드는 물을 웅덩이 속 수초로 확인하며 우리는 열심히 물을 펐다. 놀란 고기들과 새우들이 물 위로 튀었다. 한참 만에 바닥이 드러났다.


우리는 바지를 걷어 부치고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미꾸라지, 붕어, 우렁, 새우 등 웅덩이 속엔 온갖 것들이 많았다. 


신나게 웅덩이를 뒤지고 있을 때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한 종소리였다. 그날이 수요일이었고, 그 종은 교회에서 치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당장 옷을 갈아입고 달려간다 해도 늦은 시간이었다. 할 수 없이 난 웅덩이 옆 논두렁에 무릎을 꿇었다. 친구들은 웃었지만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소리, 멀리서 들려온 종소리! 그 앞엔 언제라도 무릎을 꿇고 싶다. 주위에서 뭐라 하건, 무릎 꿇는 자리가 어디라 하건 종소리 앞에서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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