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감



김 집사님은 요즘 며칠째 다리가 아파 꼼짝을 못하고 누워 있습니다. 뙤약볕 밑에서 고추 따다가 쓰러진 후 점점 기력이 쇠약해졌습니다. 


이따금씩 들릴 때마다 집사님은 아픈 다리를 걷어 올리시며 손 얹어 기도해 달라 하십니다. 별 효험이, 아니 아무런 효험이 없는 줄 알면서도 목사라고 제 손길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기도 중에 심한 통증이 일어나 서로가 어려웠습니다. 기도하면 아픈 게 싹 가시고 낫고 해야 할 텐데, 기도하는 중에 더 큰 통증이 왔으니, 그렇게 참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 다니던 교회를 친척네 다녀와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선아 할머니가 며칠 전엔 김영옥 집사님을 따라 새벽예배에도 나오셨습니다. 


예배를 마쳤을 때 집사님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선아 할머니가 늘 머리가 아파 고생이니 손을 얹어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효험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을 담아 기도 부탁에 응합니다. 

손, 부끄러운 손에 대한 부끄러움. 따뜻한 사랑과 힘이 배인 손하고는 영 거리가 멉니다. 
알면서도 기도를 청하는 교우들 앞에 기도를 합니다. 


능력없음에 대한 자괴감은 맘속 내 몫일 뿐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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