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1)

 

내 맘고생 사연을 들려주고 싶어요!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들려주는 이야기 -

 

 

마리아의 침묵?

 

오늘은 정말 특별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찾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 마리아가 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침묵합니다. 마리아가 말하는 모습은 누가복음에서만 잠깐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리아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겁니다. 마리아가 우리에게 하려는 첫 번째 이야기는 맘고생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맘고생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하는데, 그 족보는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태어나신 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요셉보다 마리아를 강조합니다.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족보에 나오는 다른 세 여인 관련 구절들을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3),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5),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6)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고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16). 여기서 보는 대로,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칭하고,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음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족보를 마무리한 다음, 마태복음 기자는 118-22절에서 예수가 태어나는 과정을 들려주는데, 여기서는 마리아가 아닌 요셉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마가복음은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예수 탄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가족, 특히 어머니는 그들이 예수를 찾으러 오는 장면(마가복음 3:31-35)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은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그 일을 지혜롭고 덕스럽게 처리하려는 것을 보여주는데,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맘고생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20)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와 결혼하는 것을 얼마나 염려하고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럴 정도였다면 당사자인 마리아는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겠습니까? 하지만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은 그 과정에서 마리아가 어떤 심정이었을 것인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지만, 마리아에게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요셉보다 마리아가 더 황당했을 것 아닙니까? 마리아는 그런 뜻밖의 일을 어떻게 감당했을까요? 마태복음은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라고 하면서도, 마리아 자신에게는 전혀 주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https://flic.kr/p/fe51AF)

 

누가복음, 마리아가 말하게 하다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누가복음은 마리아가 말하게 합니다.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 탄생 이야기와 예수 탄생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서 흥미진진하게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한 말(누가복음 1:25, 42-45)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한 말(누가복음 1:34, 38, 46-55)도 들려줍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축복하고 찬양합니다. 특히 마리아가 부른 찬양은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부른 긴 찬양(사무엘상 2:1-10)과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누가복음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인사하고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리아가 무척 당황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가브리엘이 인사할 때 마리아는 속으로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라고 생각합니다(누가복음 1:29). 그런 다음 천사가 예수 잉태와 탄생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라고 말합니다. 매우 겸손하면서 품위 있고 신앙적인 느낌을 주는 대답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그가 축복하는 말을 들은 다음, 한나의 찬양을 본받아 찬송합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 집에서 석 달을 머물다 돌아갑니다(56). 그렇게 석 달을 함께 지내면서,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하고 격려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는 달리, 두 여인의 이런 우애로운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부모 심정·자식 심정

 

마태복음을 보면, 요셉은 헤롯을 두려워해서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애굽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아켈라오를 두려워해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갑니다. 다 자식을 걱정해서 그런 겁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3장으로 넘어가면서 30 년가량 세월이 흐릅니다. 누가복음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관심을 갖습니다. 누가복음은 마리아에게 주목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누가복음 2:19),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누가복음 2:51).

 

요셉과 마리아는 마태복음 3장으로 넘어가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등장합니다(46-50).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 사실을 어떤 사람이 예수께 알렸는데, 그때 예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48). 그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정말 황당했을 것입니다. 일상적인 말씀은 아니니까요. 그런 다음 예수는 제자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49-50). 이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시고, 예수는 결국 가족들을 만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가족들, 특히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예수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몰랐을 리 없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않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10:37). 마태복음 1034-39절을 보면, 예수는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인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 19:29, 마가복음 10:29-30. 마가는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라고 해서 부모 대신 어머니만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는 부모를 자주 찾아뵙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 예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만, 부모형제, 특히 어머니를 만났다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는 큰 아들인데도,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그리 정 깊은 아들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배척당하는 아들·지켜보는 어머니

 

예수가 어느 날 고향에 왔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가 거기서 부모 형제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쳤다는 말만 합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예수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지혜와 능력에 놀라지만, 예수를 인정하거나 존중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를 배척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마태복음 13:55-56).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의 뉘앙스를 보면, 그들이 요셉과 마리아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욕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까지 당하는 것을 본 어머니 마리아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아들의 삶·어머니의 고통

 

누가복음은 예수에게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예수를 알아본 사람들, 즉 시므온과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시므온은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자(누가복음 2:29-32), 예수의 부모는 그것을 들으면서 놀라워합니다(33).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한 다음, 시므온은 부모들을 축복하고(34),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누가복음 2:34-35)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특히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한다.”는 구절은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가 앞으로 어떤 심적인 고통을 당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그 말을 듣고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예수가 처형당하는 장소에 어머니 마리아가 왔는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19:25-27).

 

아들이 밤새 고문당한 것을 확인하고, 그리고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어머니.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픔을 안고 평생을 살았을 마리아. 참척(慘慽)의 상황! 다 헤아리지 못해도, 짐작은 할 수 있겠습니다.

 

마리아가 들려주는 말

 

나는 요셉의 아내이고 여러 자식들의 어머니였지만, 사람들은 예수의 어머니로만 기억하는 거 같아요. 나는 요셉과 결혼할 생각에 부풀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천사가 찾아와 예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삶은 결코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답니다. 예수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겪은 여러 일들.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 웃음과 눈물. 그리고 평생 안고 산 참척의 고통. 그런 것들을 다 말 못해도, 맘으로 헤아려 주면 좋겠어요. 다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 보자기. 여러분에게 그냥 드릴게요. 풀어보세요.”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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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

 

우물가의 빈 물동이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4:5-42).

 

때는 이미 정오 가까이와 있었다.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시각에 물을 길으러 오는 여자라면 늦잠을 자는 어지간한 게으름뱅이거나, 시원한 아침과 저녁에 물을 기르는 여염집 여자들한테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입방아에 오르는 그런 여자임에 틀림이 없다.

 

선생님도 체면 좀 차리시지. 그래, 남녀 내외하는 세상에 여자한테, 그것도 술집 여자한테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실 게 뭐람. 옷차림이나 화장을 보시면 몰라요?”

 

우리 비위를 몹시 상하게 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은 그 여자와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물 좀 주시오.”

 

 

 

 

한 여인의, 운명의 실타래가 풀려나기 시작한다. 그 여자는 선생님앞에서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녀는 다섯 남자에게 돌아가며 안겨야 모진 목숨을 부지하는 그런 부평초였다.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하신다면 우리야 어디 부장인데요.’ ‘'어디 판산데요.’ ‘어디 사장인데.’ 하고 뽐낼 터인데, 그 여자는 남편 하나 변변히 없었다(이혼당한 여자, 처음부터 보호자가 없었던 여인, 납치 당하고 폭행 당한 여자, 몸 파는 일 외에는 아무런 생계 수단이 없는 여자, 그래서 가장 상처 입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유린당하는 여자이리라. 당신의 남편이 그녀에게서 몸뚱이 외에 무엇을 바라보던가?).

 

주님의 눈은 우리와 달라 영혼의 밑바닥을 보신다. 그 여자는 구원을 바라는 메마른 흙이다. 은총의 비가 오면 스며들고 거기 푸른 생명의 싹들이 돋는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마태복음 2l:3l).

 

기분 나쁘지만 주님 말씀이다.

 

얼마 뒤 우물가에는 빈 물동이 하나가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잊고 간 것일까? 아니다. 한 여인이 과거를 청산했다는 상징물이다. 잠시 갈증을 풀어 줄 우물물은 잊은 지 오래다. 동네의 점잖고 위선적인 중산층에게 선교를 하러 간 것이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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