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신년(3)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3)

유대인의 신년(3)

 


유대인의 신년은 잔치 기분에 들떠 기뻐하는 다른 나라의 축제들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신년의 첫날부터 열흘 동안을 ‘야밈 노라임’으로 지키며, 이는 ‘경외의 날’이란 뜻이다. 이 열흘의 기간은 첫째 날의 신년(로쉬 하샤나)으로 시작하여 열째 날의 대속죄일(욤 키푸르; the Day of Atonement)을 절정으로 끝난다. 야밈 노라임(경외의 날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날들이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이 열흘간의 경외의 날들을 올바르게 지키기 위하여 신년이 시작되기 한 달 전, 전 해의 마지막 달인 엘룰월을 준비 기간으로 삼는다.

 

경외의 날

어떤 유대인들은 엘룰월 기간 동안 매일 쇼파를 불어 경외의 날들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려 몸과 마음을 준비하게 한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부모나 가까운 친척들의 무덤을 찾아 성묘하며, 선친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관습을 지킨다. 성묘는 엘룰월에서 야밈 노라임까지 계속된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욤 키푸르(대속죄일)는 하나님께 대하여만 회개하는 날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지은 죄는 욤 키푸르 날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1월 1일부터 9일까지는 사람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며, 10일 대속죄일에는 하나님께 지은 죄만 회개한다. 그러나 1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한다 하여도, 사람에게 지은 죄를 1월 1일부터 10일까지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1월 10일 하나님께도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1월 1일부터 9일까지 부지런히 사람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한다.

로쉬 하샤나로부터 욤 키푸르 사이에 있는 안식일(샤밧)을 가리켜 ‘샤밧 슈바’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안식일’이란 뜻이다. 슈바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 곧 호세아 14장 1-9절까지의 첫 구절 “돌아오라 이스라엘아”의 첫 자에서 따온 것이다. 이날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는 안식일이다.

지켜야 할 계명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이 기간 동안에 지켜야 할 계명이 있다. 그 계명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새해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묵상한다. 이 일을 위하여 일정한 시간을 따로 정하여 매일 묵상한다.

둘째, 지난해에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나 살펴본다.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화해한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사람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도 화해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욤 키푸르에는 하나님과 관계된 죄만을 회개한다. 그러나 대속죄일이 되기 전까지 사람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욤 키푸르(대속죄일)의 회개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문제는 욤 키푸르가 되기 전에 다 해결하고 당일에는 하나님께 지은 죄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잘못한 사람이 찾아와 용서를 빌면 받아 준다. 탈무드는 “용서할 때는 삼나무처럼 뻣뻣하지 말고 갈대처럼 부드러우라”고 가르친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남에게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용서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계명들을 지키는 가운데 유대인의 신년은 회개와 용서, 화해와 기쁨의 영적 축제 기간이 된다.

카프롯

‘카프롯’은 자기의 죄를 닭에게 전가시키는 대속의 관습이다. 대속죄일 이틀 전에 행하며 특별한 시간이 정해진 관습은 아니다. 오후에 하는 사람, 저녁에 하는 사람, 밤에 하는 사람 또는 다음날 아침에 행하는 사람도 있다. 남자들은 수탉을, 여자들은 암탉을 준비한다. 식구가 너무 많아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은 닭 대신 돈을 사용하기도 한다. 돈을 사용하는 사람은 보통 대속죄일 하루 전에 행한다. 행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닭의 다리를 묶는다. 각 사람은 시편의 시 중에서 ‘아담의 아들들’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구절을 읽는다. 보통, 사람마다 읽는 구절이 다 다르다. 아무 구절이나 원하는 대로 ‘아담의 아들들’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것이면 된다. 이때 다리가 묶인 닭을 사람의 머리 주위로 아홉 번 돌린다. 닭을 머리 위로 돌리는 동안 유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을 내 대신에 이것을 속죄물로 바칩니다. 이 수탉(혹은 암탉)은 죽을 것이요. 나는 건강과 장수에 들어갑니다.” 돈으로 대신하는 경우는, “수탉(암탉)이 죽을 것이요” 대신에, “이 돈이 구제를 위해 쓰여질 것이요”라고 문구를 바꾼다. 대기하고 있던 쇼헷(합법적인 도살자)은 닭을 잡아 죽인다. 문헌에 의하면 10세기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 사이에 이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당시 부자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 이삭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셨던 양을 기념하여(창세기 22:1-15), 수탉이나 암탉 대신 양을 사용하기도 했다.

욤 키푸르(대속죄일)

신년 첫 번째 달의 열재 날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로쉬 하샤나로 시작된 열흘간의 경외의 날이 끝나는 날로, 그 절기의 절정이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대속죄일로 지키며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라고 말한다.

신년 아홉째 날 저녁에 시작되는 대속죄일은 다음날 저녁 울려 퍼지는 쇼파 소리와 함께 끝난다. 이날, 온 이스라엘은 금식을 선포한다. 모든 유대인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 대속죄일 전날 해지기 전에 유대인들은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친다.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금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후 해가 지기 직전에 촛불을 켜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대속죄일은 회개의 날일 뿐 아니라 기쁨의 날이다. 십일 동안의 회개를 신실하게 마친 유대인은 대속죄일이 끝났다는 쇼파 소리와 함께 자기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감사한다. 사람과 하나님께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는 축복의 해가 될 것을 믿는다. 대속죄일이 끝나면 금식을 파하는 식탁을 대한다. 새로운 신년의 삶을 시작하는 기쁨의 식탁이다.

대속죄일에 지켜야 할 계명들

모든 유대인은 대속죄일에 지켜야 할 계명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 지은 죄를 낱낱이 회개한다.
둘째, 신년 9일째 저녁 해지기 전까지, 다시 말해 대속죄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과 화해한다. 그 후에야 대속죄일을 맞이한다. 사람들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룩한 대속죄일을 맞이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이다. 셋째, 구제한다. 구제는 유대인으로서 언제나 지켜야 할 계명이지만 대속죄일에 그 뜻이 더욱 강조된다. 유대인들은 신년 첫 달 9일째 저녁 해지기 전에 즉 대속죄일이 시작되기 전에 구제금을 따로 떼어놓는 풍습이 있다.
넷째, 회당에 가기 전에 아버지가 자녀들을 축복한다.
다섯째, 성인식을 마친 모든 유대인은 하루 동안 금식한다. 아직 성인식을 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금식 시간을 두세 시간부터 시작하여 매해 시간을 늘려 나가다가 성인식이 지나면 하루 동안 금식한다.
여섯째, ‘이즈코르’ 기도문을 음송한다. 이즈코르는 먼저 죽은 유대인의 선조들을 기억하는 기도다. 이 일을 통해 유대인들은 과거의 전통을 오늘날에 이어 받는다.

유대인의 신년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회개와 용서의 큰 절기다. 해마다 반복되는 회개와 용서, 해마다 화해로 시작되는 신년, 이는 유대인을 유대인 되게 하는 유대인의 가장 큰 유산 중의 하나다.

최명덕/조치원성결교회 목사,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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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성서조선>, 1940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김교신의 표현이다. 1940, 일제 치하의 막바지에 김교신은 한 일본 무교회 잡지를 읽다가 큰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시즈오카에 사는 한 일본인 쌀장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선인 근로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주로 일거리를 따라 1~2년씩 거주하다가 타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들은 모두 마지막 쌀값을 갚지 않고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쌀장수들은 조선인들에게 쌀을 팔 때에는 아예 그것을 계산에 넣고 저울추를 속여서, 그러니까 말을 적게 되어서 쌀을 팔았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었던 그 쌀장수는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그냥 정확하게 되어 쌀을 팔았고, 언제나 마지막 쌀값은 받지 못한 채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가 놀라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물은 뒤 김교신의 통탄어린 글이 이러하다.

혹시나 하여 쿠와나시 거주의 지우에게 물었더니 바로 그대로이고, 그 중에는 상당한 자산을 만들어 고향에 토지를 살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면서도 역시 최후의 쌀값은 미불한 채 도망치는 동포가 상당히 많고, 그 때문에 정직한 사람끼리 누명을 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실로 기막힐 소식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가 지금 성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외친다. 쌀알 하나하나의 대가가 지불되어 이 소리가 멈출 때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라? 김교신은 정통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네!’라며 비난하는 신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현재적 차원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교신의 저 통탄에 찬 외침은 예수께서 성전 중심의 속죄제의 의식을 무력화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우러름(信仰))이 구원의 삶을 얻게 할 것이라선언하신 참 의미와 맞닿아 있다.

 

 

예수 당시 평범한 유대인들은 참으로 궁핍하고 처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도, 유대 지방 정부에도, 그리고 유대교 성전에도 삼중으로 세금을 내야하는 까닭에 일상이 늘 빚쟁이이던 삶이었다. 변변치 않은 벌이에 강제로 걷어가는 세금을 채우자 하니 안식일이라고 쉴 형편이 아니었다. 안식일 법을 철저히 지키고 나는 경건하다 떳떳이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소위 있는 자들뿐이었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겠나!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숨을 돌리게 하라는 지상명령 아니었나. 숨이 무엇인가? 루아흐, 생기, 하나님께서 무릇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에게 불어넣어주신 그 숨을 돌릴 틈을 주는 것, 그게 안식일의 정신이었는데. 예수 시절, 하나의 형식적 규례로 굳어진 안식일 법은 오히려 그 법으로 가여운 평민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숨통을 조이는 올무가 되었다. 죄를 지었으니 죄사함을 위한 제의를 드려야 할 터. 하여 속제제의를 위한 제물이라도 준비하려면 그게 또 돈이다. 준비한 제물이나마 제사장들이 고이 받아주면 좋으련만, 이 양은 흠이 있다. 이 비둘기는 결격이다. 이리 퇴짜를 놓으며 미리 뒷돈을 받은 장사치에게로 이 가여운 사람들을 인도한다. 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시세보다 더 많이 주고 제물을 사야하는 사람들. 그만큼의 돈이 없으면 그냥 죄인으로 고개 숙이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예수 당시의 이웃들이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인 만드는 성전 제사장들을 향하여 예수는 분노하셨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소리치시고, 장사판을 다 뒤엎으셨다. 죄의 용서는 사랑으로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얻을 것이요, 구원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길로 돌이키겠다는 회개그것 하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에게 선포된 구원(소테리아)은 그가 주여, 제가 남에게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결단했을 때 도래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여, 여호와 앞에 호소하기를 잠시 유예하여 다오. 그대들에게 모조리 ・・・ 대가가 지불될 때까지 우리는 천국에의 입장권도 유예하여 노력하리라. 주 예수의 복음에 그 힘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오늘 우리가 저 하늘에, 꽃이 되고 별이 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김교신의 절절한 고백은 식민사관의 연장선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성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구원까지도 유예하면서 노력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회개(돌이킴)’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구원의 여정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다시 볼 일 없다고 제 몫의 삶을 정직하게, 책임 있게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구원받은 이의 삶일까! 비단 그리스도인들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무책임한 삶, 비도덕적인 행위, 탐욕스런 실천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억울한 희생이 있다면, 그 하나하나를 갚아낼 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적 삶을 그치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이미 대가를 지불하신 구원을, 무슨 이유로 천국 입장권마저 유예하며 노력을 하나? 모르는 소리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 이미 지불하셨던 것은 유대교적 속제제의가 담보한다는 죄의 용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용서를 위해 제의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는 막 살아도 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죄의 용서를 받은 이로써 합당한 삶, 자신이 그동안 이웃에게 행해온 부당함과 억울함을 갚아주고 다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는 것! 그것이 구원의 삶일진대, 오늘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쌀알은 세월호 아이들이고 송파 세 모녀이며, 곧 그처럼 될 만큼 삶이 위태로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을 도적질하거나 방관하는 한 우리도 구원의 삶에서 멀리 있다. 예수의 복음이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려면, ‘나만 구원받는 사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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