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3)

 

잡음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디오 마니아 중에는 CD 플레이어로 음악 듣기를 포기하고 턴테이블을 다시 들인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디지털로 음악을 들으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서 일찍이 턴테이블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오디오 마니아들은 CD 플레이어와 턴테이블을 동시에 즐기거나 CD로 만족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CD플레이어가 처음 출시될 때부터 디지털 음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외국에서는 모든 음악 마니아들이 CD 플레이어로 말을 갈아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LP와 턴테이블 제작하던 회사들이 거의 문을 닫았거나 CD 플레이어 회사로 바뀌었음에도 LP나 릴데크(Reel deck)를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날로그 제품들을 내다버렸습니다.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그마저도 희귀해졌습니다.

 

디지털 음악이 인체에 해롭다는 학설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주파수를 잘라낸 CD나 LD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날로그 시스템이 표현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미 체득한 마니아들은, 하나둘씩 턴테이블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적 설명보다는 오랜 동안 체득한 자신의 몸을 더 믿은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마니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LP를 다시 찍어내는 음반 회사들이 생겼고, 이전의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전된 과학기술을 턴테이블 제작에 쏟아 부었습니다. 요즘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턴테이블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단순하던 턴테이블이 탱크처럼 견고하고, 항공기처럼 정밀해졌기 때문입니다. 세계 음악 시장의 이런 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는 교보문고와 같은 음반 매장에 LP코너가 부활을 했습니다. 중고 LP를 판매하는 매장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귀찮아서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지 않는 마니아들이 더 많습니다. 턴테이블을 제대로 들으려면 CD 플레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들으려면 방법이 없지 않으나, 그렇게 들을 바엔 차라리 CD 플레이어로 듣겠다는 것이지요.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으려면 판이 다 돌아갈 때까지 옆을 지켜야 하고, 세팅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먼지 제거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고, CD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합니다. 게다가 소위 명반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고장이라도 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CD나 DVD를 통해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턴테이블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LP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일명 튀는 소리라 부르는 잡음입니다. 음악과 관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면 거의 모두가 턴테이블 튀는 소리가 정겨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 세대는 과거, 특히 턴테이블의 잡음과 어느 정도 화해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제 오디오 메인 앰프에서 잡음이 납니다. 턴테이블을 틀었을 때처럼 간혹 음악에 잡음이 섞이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름난 수리점에 두세 차례 다녀왔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시 가려니 민망해할 사장 얼굴이 생각나서 못 갔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데다 음악을 주로 듣는 사무실이 택시를 타려고 해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보니, 큰맘을 먹지 않고는 다른 수리점을 찾아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한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메인 앰프를 옆으로 치워놓고 서브 시스템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브는 역시 서브인지라 얼마 못 가서 그 소리가 그리워 메인 앰프에 전원을 넣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듭하다가 턴테이블 잡음에는 관대함을 넘어 옛날에 대한 향수까지 느끼면서 앰프나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에는 못 견뎌하는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잡음에 대해 제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러자 생활 속의 잡음이 보이더군요. 제거하지 못해 안달인 잡음이 생활 속에도 있던 것입니다.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던 90년대 말에 저는 표준 한국어에서 크게 일탈한, 아니 한국어를 조롱하는 듯한 젊은이들의 인터넷 언어가 불편했습니다. 학자들이 대화나 강의에서 지나치게 외국어를 많이 섞는 것도, 목소리 크고 지체 높은 경상도 남자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남자들의 강한 악센트에서 민주주의와 국민들에게 가했던 경상도 출신의 군인과 정치인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인들이 아무데서나 목사님, 집사님, 형제님이라 호칭하는 것도 짜증스러웠고, (요즘은 한결 익숙해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 만 하더라도 지하철이나 공중 장소에서 입을 쪽쪽 맞추는 청춘남녀들을 보면서 오르는 혈압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잡음의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진실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소음의 완전 제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완전한 소음의 제거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까지 제거해야 할 만큼 소음이 해로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시카고대의 소비자연구저널은 2012년에 50~70데시벨(dB)의 백색소음이 완벽한 정적보다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한국산업심리학회에서도 정적 상태보다는 백색 소음 속에서 집중력이 47.7퍼센트, 기억력이 9.6퍼센트 향상되는 반면 스트레스는 27.1퍼센트 감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백색소음이 학습시간을 무려 13.6퍼센트나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백색소음(white noise)’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백색소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된 용어인데요. 7가지 빛을 합하면 백색광이 되는 것처럼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합해지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비 오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등 자연에서 나는 소리와 카페 소음,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소리, 진공청소기나 비닐봉지 소음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반복적인 소리가 모두 백색소음이라는 것입니다. 꼭 소음이 아니더라도 인체에 해로운 존재로만 알았던 것들이 과학의 발달로 이로운 물질로 판명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잡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우리의 태도나 관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잡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벌써 제 메인 앰프를 팔았을 것입니다. 많은 오디오 마니아들처럼 잡음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곰곰이 따지기보다는 저도 감정적으로 오디오를 팔거나 살 때가 많거든요. 이런 감정적 행동들이 과연 오디오 처분에만 국한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완전무결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잡음과 서둘러 화해해야 할 이유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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