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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

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일구는 가없는 사랑

by 한종호 2018. 5. 8.

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일구는 가없는 사랑

- 40평생 누워 있는 아들 돌보는 한 노모의 애절한 사연


전남 여수 앞 바다의 거문도(巨文島). 이름하여 “큰 글을 닦은 섬.” 옛날 중국인들이 이 섬에 우연히 상륙하여 필담(筆談)을 나누다가 의외의 지식수준에 놀라 부른 이름이 내려오게 되었다는데 글 잘하는 것이 못하는 것보다야 자랑스럽기는 하겠지만 다른 말로 뒤집자면 중국 문화의 영향이 이 섬에까지 파고들은 것이라고나 할까? 남의 나라 글을 아무리 잘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글이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것은 아니니 만큼 그 거문도라는 이름은 어떻게 보면 이 섬의 ‘소외된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찾아볼 이 섬의 한 늙은 어머니와 그 늙은 어머니 못지 않게 늙어버리고 병든 아들의 기막힌 사연은 그 운명의 실타래 속에 버려진 채 우리의 마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거문도는 우리의 근대사에서 19세기 후반, 중국을 집어삼키고 있던 영국이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점한 역사로 유명한 섬이다. 하고 많은 섬 가운데서 그 조그만 섬을 우리의 허락도 없이 차고앉아서 러시아가 내려올 뱃길을 가로막겠다고 수를 둔 저 멀리 서양(西洋)의 섬나라 영국과 이 동방의 작은 섬이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이 섬사람들의 삶의 간단(間斷)없는 풍파를 말해준다. 역사에 등장할 정도로 주목되었던 땅이었으나 정작 그곳에 사는 이들은 역사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저 이름 없는 백성들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이해타산을 위해 자신의 운명이 잠시 볼모로 잡혔던 그 섬은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한려수도(閑麗水道)를 펼쳐내는 복잡한 곡선의 남해(南海), 그 언저리에 외롭게 떠있다. 그리고 그 섬 안에 살고 있는 조경백이라는 60이 넘은 아들은 꿈쩍도 못한 채 2평 짜리 비좁은 방에서 오늘도 몸을 한 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40년 이상 누운 그 자세로 80대 중반에 접어든 노모의 눈물겨운 수발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매어있는 사랑의 볼모일까? 누구도 상대를 포기하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은 어찌 보면 기한 없는 형벌이고 인고(忍苦)의 슬픔이다.


이춘덕, 조경배 씨 모자의 기구한


어머니 이춘덕(85세, 거문교회 집사)씨가 아들에게 ‘꽁꽁 묶이게’ 된 것은 46년 전, 스물 셋의 아들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병균을 막아야 할 항체가 제 몸의 관절 세포를 나쁜 세균으로 인식해 공격하고 파괴하는 질병이 닥쳤다. 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잇는 고관절에 처음 증세가 나타난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후 병마는 계속 퍼져서 지금은 목 아래 모든 뼈마디가 오그라들고 비틀어진 채 굳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나날을 보내왔다. 그렇게 46년… 전신마비로 46년 동안 문밖을 나서보지 못한 아들. 어머닌 그 아들의 손발이 되어 반평생을 사셨다. “진작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한국 전쟁이 막 끝난 당시 2남 4녀를 둔 이 씨 부부는 “끼니 때울 일을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 남편은 조각배로 고기잡이를 하고 자신은 떡을 빚어다 팔았다. 거문도에는 지금처럼 보건지소도 없었고, 1000km 남짓 떨어진 여수항까지 여객선도 없었던 때여서 아들 치료에 도저히 엄두를 못냈다고 했다.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아들은 16살 때 발병했다. 반년쯤 누워 있다 일어났지만 3년 뒤 더 심하게 재발했고, 쑥뜸을 여러 날 맞고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세번째 병이 닥치자 아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이 무렵 떡방아에 머리를 부딪혀, 지금까지도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히는 두통. 약도 소용없다며 어머닌 늘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외진 섬에서 어머니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마에 훈장처럼 파스를 오려붙이는 일뿐이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이제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대나무 꼬챙이를 움직여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성경을 보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 보다 책장을 넘기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들. 그래도 조경백 씨는 신구약 성경을 여덟 번이나 읽었다. 요즘은 하루에 20장씩의 성경을 읽으며 보낸다. 욕창 방지한답시고, 10cm 높이의 간이침대에 누워 천장에 매달려있는 성경책을 읽고 있는 조 씨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늙은 어머니. 훅하고 바람이 불면, 두 분 다 그대로 재가 되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조경백 씨는 요즘 아침, 저녁 하루 두 번만 식사를 한다. 한 끼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30분.그건 허리 아픈 어머니에겐 너무나 큰 무리이다. 그래서 아들은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점심을 거르기로 했다. 어머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흰머리가 나지 않는다. 당신이 늙지 않아야 자식을 건사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는 어머니. 머리가 허연 아들은 어머니의 검은 머리가 그래서 또 가슴 아프다. 좋은 일도 많고 나쁜 일도 많은 넓디넓은 세상. 그러나 아들은 그 세상을 바라만 볼 뿐 만질 수가 없다. 그래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아들은 버릴 수가 없다. 두 평도 채 안 되는 비좁은 방안. 그 속에 갇혀 사는 아들에게 어머닌 유일한 말동무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다.


조경백 씨는 새벽 4시면 하루를 맞이한다. 첫 아침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눈을 뜨면 처음 맞아주는 것이 샛별의 반짝거림입니다.” 그렇게 시리도록 별을 보고 눈이 맑아져서 밝아오는 아침, 한밤 내 긋던 별똥별만큼 많아진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과 커다란 광주리 하나 가득 세월 이시고 홀로 서신 어머니를 바라본다. 우리는 누구나 엄마의 풍 안에서 늘 세상이 따뜻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늘 바람 부는 쪽으로 등을 돌리고 계셨던 어머니의 세월은 늘 등이 시리지 않았을까. 외딴 섬 거문도, 그 속에서 또 다른 섬처럼 외롭게 살아온 모자의 방에 불이 꺼지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머니는 당신 것보다 먼저 아들의 수의를 마련해 놓으셨다. 당신께서 먼저 가면 돌봐줄 이 없는 아들 생각만 하면 어머니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저 사람이 먼저 가야 내가 마음놓고 갈텐데… 내가 먼저 가면 어떡하나. 그 생각하면 내가 잠이 안오요.” “또 나가 만일 어쩌고 보면… 너가 나 앞에 가야 할 것인데…” “불쌍한 말로 나 앞에 가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눈을 감고 간다.” 아들을 앞서 보내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가 없다는 어머니. 그러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말을 듣지 않는 몸. 어머닌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일까.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자식에 대한 동물적인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어머니가 아프시면 성경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밝은 모습이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아들에게 늙고 초라한 어머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모진 세파 속에서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아들을 지켜온 어머니. 46년! 세상은 참 무섭게 변했는데, 모자의 46년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어머닌 또 내일 아들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실 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비탈거미는 일생에 단 한번 4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초여름,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온다. 어미는 커다란 곤충들을 잡아먹어 스스로의 몸을 살찌운다. 추운 겨울이 되고 먹이가 줄어들면, 어미 거미는 수 십 마리의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뜯어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배 밑에 새끼를 놓고 톡톡 두드리면서 주위를 환기하는 것이다. 굶주린 새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미 위에 올라타고, 어미의 몸을 뚫어 독액과 소화액을 주입한다. 어미는, 어미는, 순식간에 우글거리는 새끼들의 밥이 된다. 비탈거미는 더 이상 생식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비정한 운명을 잘 알고 있다. 하여 의미 없는 육체를 새끼들의 자양분으로 헌납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극한의 사랑이다. 거문도의 사연은 ‘비탈거미’를 생각나게 한다. 어머니가 감당한 두터운 세월의 무게에 한숨을 몰아쉬며, 지독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고개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이 꼼짝 못하고 누운 그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동물과 구별되는, 일어설 직립 능력을 박탈당한 식물인간적 상태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살아갈 의미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처지는 비극적이다.


건장하고 활기 넘치는 시기를 보냈어야 했을 그는 이 병마의 시련 속에서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과한다. 누구도 그의 삶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지팡이 하나를 갖고 하나님에 의존해서 홍해를 가르고 바위의 물을 낸 모세와 다를 바 없이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인생을 살아낸다. 모세와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의 삶을 해방시키는 일에 부름 받았다면 조경배, 그는 무엇보다 그 자신의 병든 육신에 갇힌 영혼의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 쳤다.


그의 광야의 삶은 처절했고 그 처절함이 그를 성서와 신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육신의 지독한 질고(疾苦)가 끝나는 날, 그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유일한 소망으로 견디고 있다. 그런데 그 견딤은 좌절의 종점에서 피할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견딤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의 85세의 늙은 어머니 이춘복 집사의 사랑과 헌신의 삶이다.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


자신의 고통도 심하건만 어머니는 아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을 스스로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노모자(老母子)의 삶은 그래서 마치 섬 가운데 또 하나의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섬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의 바다이다. 그 바다의 깊이만큼 생긴 부력(浮力)은 그 섬을 가라앉지 않게 하고 있다. 그로써,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라는 세상의 판단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떤 생명도 그 생명이 끝나기 전에 먼저 저버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 파도이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파도와 만나고 있는 것일까? 이들 두 노모자의 모습은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밝고 편안했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모르는 평안이 있었다. 세상은 이들의 삶을 외면하고 소외시켰지만, 이들 노(老)모자는 그 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생명의 시간을 일구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아파하는 자의 삶의 자리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들 두 노(老)모자는 바로 그런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고난은 이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실마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 보여도 얼마나 간단치 않은 일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들의 장래를 소망스럽게 기원하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날벼락이 떨어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육신, 그리고 자신의 영혼까지 아들의 삶에 쏟아 부어 왔다. 세상이 보기에는 도저히 가망이 없고, 그래서 그 사랑의 헌신이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이 어머니의 병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꺾일 줄 모른다. 자신의 생애 절반을 송두리째 바친 지난 세월이 그녀에게 한과 억울함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이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다. 방 한 켠에 덩그라니, 마치 오래된 짐처럼 놓여 있는 아들의 육신은 이춘복 집사에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의 무게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그 무게를 능히 지고도 아무런 불평과 탄식이 없다. 세상에 진정한 강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어머니가 아닐까? 이 어머니의 사랑을 무너뜨리게 할 것이라고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어떤 좌절스러운 현실이 맞닥뜨린다 해도 어머니는 그러한 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두 달도 아닌 무려 46년의 세월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성인이 된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온갖 시중을 들면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늙은 어머니가 현실에서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에 제기되는 모든 하찮은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고 만다. 평범한 시골 아낙네에 불과했던 이 어머니에게서 그렇게 강한 힘이 솟아 나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가누지 못하는 몸을 건지는 생명줄


자신의 이러한 신세를 한탄하고 눈물을 쏟을 듯 한데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결국 그 아들에게 영원히 평안한 자리로 가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것이 잠시의 고난이나, 그 고난의 강을 건너면 이제까지의 고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감사가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육신으로 사는 아들의 하루하루가 감사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뿐이다. 어머니가 손을 놓는 순간, 그 아들은 지옥을 경험할 것을 아는 어머니는 혼신을 다해 그 아들의 삶에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이 가해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몸이 곧 자신의 몸이요, 아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인 이 어머니에게 하여, 사랑은 가누지 못하는 몸을 건지는 생명줄이다. 생명줄을 놓아버리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될 것인지 아는 어머니는 세상의 동정이나 세상의 어쭙잖은 조언에 대하여 조용히 눈과 귀를 닫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 가닥이라도 남은 생명의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그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을 그녀는 은연중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자신에게 이 고통은 설명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주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의 생명과 삶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상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에 이어지는 잠시의 통로이다. 그 통로로 들어가는 길이 힘겹다 해서 하나님의 처사에 비난을 더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는 첩경일 뿐이다. 세상의 눈으로는 사는 의미가 어디에도 없는 듯 하지만, 이러한 육신을 지니고 이러한 고난을 겪는다해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들은 안다. 그 앎이 이들에게 믿음의 뿌리이다.


그리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에 닿아 있는 감격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지경에 있는 자신들에게조차 다가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앞서는 것이다. 실로, 온전한 육신을 지니고 있어도 그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 나라와는 인연이 없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에게 이들 두 노 모자는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사자(使者)이다.


그 어떤 생명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버림받지 않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들의 삶이 이 절망과 좌절의 시대에 희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 이유이다. 하여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외면과 방치 가운데 외딴 섬에 갇혀 지내는 상황일지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평안의 힘을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신앙에서 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이들 두 모자는 서로에게 볼모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건지는 은혜의 터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소외시키나 하나님은 품으시는 이 놀라운 사랑의 현장은 끝없는 하나님의 바다를 보여준다. 모든 아픔과 고난을 품으시고 그것을 생명의 힘으로 나누어주시는 하나님 말이다.


거문도의 밤은 바닷바람이 차가 왔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에 끝까지 의지하는 이들 두 모자의 존재로 하여 마치 별이 빛나는 느낌이었다. 아, 누가 인생에서 실망할 것인가? 아, 누가 자신의 삶을 저주할 것인가? 거문도에 가보라.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놓지 않으시는 사랑의 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끈에 매어 있는 배는 인생 어디에서도 표류하지 않을 것을….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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