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6)
갤럽이 전하는 한국의 종교 실태?
최근 한국 갤럽이 1984년부터 2014년까지 총 5차례의 사례 조사의 일부를 공개하였다. 아마도 곧 출간될 단행본 비교 조사 보고서의 판촉을 위한 맛보기일 것이다. 그걸 짐작하면서도 쉬 눈길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적어도 한 가지 주제로 무려 30년간의 여론 추이를 비교해서 살필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게다. 한국 갤럽의 조사는 1984, 1989, 1997, 2004, 2014년에 걸쳐 시행되었고, 조사대상수는 대략 1500에서 1900명 안팎이다. 대략 이 정도 기간과 사례수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분석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매일신문
아니나 다를까 한국 갤럽의 보도 자료가 나오자마자 우선 종교계 미디어부터 열띤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나름 발 빠른 대응을 보이는 개신교와 불교와는 달리 천주교는 별 반응이 없다. 그리고 각 미디어들이 뽑아대는 제목도 각 종교별로 약간 차이가 나는 점도 흥미롭다.
우선 개신교 쪽은 종교인 비율에 관심이 많다. 2014년 한국 갤럽의 조사 결과 1,500명 사례자 중 불교인은 22%, 개신교인은 21%, 그리고 천주교인은 7%였다고 한다. 반면 불교계에서는 호감도를 맨 위로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조사 결과 호감도 1위 종교는 불교로 25%를 기록했고, 그 다음은 천주교로 18%, 개신교는 꼴찌로 10%였다.
그런데 더 눈에 가는 결과는 아예 호감 가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수로 무려 46%에 달했다. 종교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신교와 불교가 나름대로 공을 들여 이번 통계 결과의 의미 찾기에 열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왜 천주교는 잠잠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일까? 종교학자로서 내가 정작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다.
난 통계를 잘 믿지 않는다. 물론 모든 통계는 사기라는 업계의 비밀(?) 때문만이 아니라, 설문조사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아무리 질문 설계를 잘했다 하더라도 답변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적는 사람의 다양한 정서적 교감, 충돌, 갈등, 혹은 견제가 그 순간 작동하고 있기에 기계적인 객관성을 통계에 기대하기란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계는 일종의 심리게임이랄 수 있다. 그건 게임이지 과학은 아니다. 하지만 꽤,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재고, 새기고, 쪼개고, 터는 맛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통계는 날 것처럼 요리를 기다리고, 보고 분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기 때문에 이처럼 재미있는 게임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번 한국 갤럽의 보도 자료만을 놓고 본다면, 한국사회에서 종교로서 그나마 제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개신교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20%의 비중이 그렇고, 그중 80%에 해당하는 이들이 정기적인 종교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68%(2014년 기준)에 달하는 이들이 십일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선택하는 종교라면 나름 그 방향 설정은 ‘종교적’이라고 봐줄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불교는 좀 애매하다. 일단 가장 많은 집단을 갖고 있고 호감도도 다른 종교들에 비해 높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사찰을 방문하거나 불교적 종교 행위를 하는 이들의 비율은 고작 6%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명목상 신자에 머물고 있다고 할 정도도 미미한 비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불교에 대한 호감 역시 일정 부분 왜곡되어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겠다. 아마도 불교에 호감이 간다고 응답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종교적 색채가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옅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답은 불교라기보다는 그냥 일반 종교적 행위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 설문의 지문에 ‘개인에 대한 강요가 적은 종교’ 요런 형태의 항목이 있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신교와 불교가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을 때 천주교는 그저 말없이 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형국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난 것일까? 난 이를 ‘자영업-외국기업-공기업’이라는 구도로 이해하고 싶다.
우선 개신교는 자영업에 가깝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사회적으로 공적 조직과 연 닿아있지 않다. 그래서 운영에 관한 일체를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자영업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개신교는 신자들에게 지속적인 신심에 기초한 종교 행위를 독려하게 된다. 그것이 제대로인 방향인가 아닌가는 일단 뒤로 미루자. 내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성향과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는 가장 종교적인 지향을 보이게 된다.
천주교의 경우는 전형적인 외국계 지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는 개신교처럼 자영업 마인드도 아니다. 뒤에 바티칸이라고 하는 든든한 구석이 있다. 국내에서 영업이 좀 시원찮아도 자금력 두둑한 본사 덕분에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 천주교의 경우 신자들에 대한 독려 행위가 개신교보다는 약하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은 개신교인들에 비해 조금 느슨한 신앙 생활을 향유하게 된다. 이 점이 정기적 종교 행위와 십일조 기부에서 개신교에 비해 뒤처지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불교의 경우는 좀 다르다. 통계만 보자면, 정기적 종교행위를 하는 사람 수가 6%에 지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수의 사찰들은 어떻게 운영될까? 물론 정기적인 종교 행위 외에도 불교축일과 각종 연등 판매비 등이 쏠쏠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다. 지금의 불교를 유지하는 뭔가 다른 것은 없을까? 난 그것을 공적 자금의 유입으로 꼽는다, 다들 한국의 불교가 천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오해한다. 물론 불교라는 보편 종교야 천 년 전에 한반도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조계종이라는 근대 종단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아, 물론 고려 지눌(知訥, 1158 ~ 1210)을 시조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논란의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조계종의 시작은 1941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기다.
사실 조선조 5백 년 동안 유교 정부의 이념적이고 체계적인 탄압으로 인해 시민들의 생활 세계에서 종교로서 불교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교가 다시 시민들의 종교 생활에 편입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였다. 그 시기 서구를 통해 새로운 종교인 개신교가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많은 지식인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이 새로운 종교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펼치게 되니까 이에 대한 일제의 반응이 불교의 장려였다.
젊고 유능한, 그리고 신지식으로 무장한 기독교도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혹은 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는 조직적으로 한국에 불교를 재흥시켜 나간 것이다.(James Huntley Grayson, Korea-A Religious History, N.Y.: RoutledgeCurzon, 2002, p. 184) 물론 일본 정부는 재정 후원도 잊지 않았다. 대신 그 시대 한국 불교는 철저히 일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대처승 중심의 왜색 불교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하튼 이런 역사-정치적 환경 하에서 1941년 6월 한국 불교는 ‘조계종’의 이름으로 새롭게 승단을 조직하고 현대 불교의 재건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불교 개혁의 동력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그것도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정권 시절에 이뤄지게 된다. 1954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친일세력 퇴치의 일환으로 대처승들을 축출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한국 조계종은 비구니 중심의 선종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런 역사적 정황을 살펴본다면 지금 조계종의 역사는 70여년 정도에 머무는 젊은(?) 종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 하에서 해방 후 종단 자체를 추스르기에 급급했던 불교로서는 한국 주류사회에 큰 비중으로 자리를 잡기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종단 자체의 비민주적 전횡과 총무원장들의 사익 챙기기에 급급하여 불교 자체의 힘이 분산되었던 것도 한국 주류층 편입에 곤란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다 1980년 이른 바 10.27 법란을 통해 큰 충격을 받은 불교계가 1986년 6월 <정토구현 전국 승가회>를 발족시키고, 1994년 4월 서의현 총무원장을 사퇴시킨 후 곧바로 <조계종 개혁회의> 출범 시키게 된다. 이후 조계종 내 개혁적인 젊은 승려들이 내부 개혁과 더불어 대사회 대책반을 꾸려가며 조직적인 대정부 활동을 하며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역사적 흐름을 살펴본다면 지금의 불교는 마치 하나의 이익 단체나 혹은 정당 단체처럼 영남권 투표자들을 볼모로 대정부 압박에 몰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사실 종단으로서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점으로 인해 정부의 지원에 의존율이 크면 클수록 종교로서의 불교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는 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불교는 ‘종교편향’ 운운하며 필요한 재정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것에 연연하거나, 혹 ‘편향’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교적 가르침 함양과 개인적 수양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황 속에 불교는 스스로 종교적 모티브에 충실하기보다는 덩치 큰 사회적 공적 자금에 기대려하는 속성을 갖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신도들의 종교성 제고가 그리 급급한 당면의 과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공기업 마인드이다. 업무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에 목매달지 않아도 꼬박꼬박 때만 되면 계좌 이체되는 월급의 유혹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력은 뒤처지게 된다. 아마도 이런 점이 작금 불교의 깊은 근심이 아닐까 싶다. 덩치는 커졌지만 종교적 모티브와 자발성은 한참 못 미치는 이 불균형이 두고두고 불교를 괴롭힐 수 있을 것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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