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49)
사박사박
전남 곡성군 입면 탑동마을,
평생을 흙 일구며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우연한 기회에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
한글 공부는 시로 이어졌다.
인적 끊긴지 오래된 묵논처럼 평생을 묵혔으니
툭툭 하는 말이,
슥슥 지나가는 생각들이 모두 시일지 모르겠다 싶은데
역시나 웅숭깊다.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영화 '시인할매' 스틸 컷 (사진=이종은 감독 제공) - CBS 노컷뉴스
윤금순 할머니(82)가 쓴 <눈>에선 눈이 내린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펑펑 내린다.
내가 골(글) 쓰는 걸
영감한테 자랑하고 십다
여 함 보이소
내 이름 쓴 거 비지예(보이지요)
내 이름은 강금연
칼라카이 영감이 없네
서툴게 적은 글을 누군가 시라 하면,
아뿔싸 손사래를 치며 이리 시시한 게 뭔 시라요 할 것 같은 투박한 글이다.
하지만 ‘내 이름은 강금연’에서 울컥 목이 멘다.
그 한 마디 하기까지의 세월이 아뜩하다.
할라카이 대신 칼라카이가 된 건 목젖이 칼칼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둥근 곡선이 날카로운 직선이 된 ‘칼라카이’에선 먼 산을 본다.
팔십오 년 세월이 흐린 하늘 속으로 흐트러진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눈이 내릴 만하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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