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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by 한종호 2019. 3. 21.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예전에 독서캠프를 통해 만난 분 중에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풀꽃’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지요. 시골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처음 뵙는데, 그 분은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한 신문에 쓰고 있는 칼럼을 눈여겨 읽어오고 있다 했는데, 금방 친숙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중에 최근에 알게 된 시가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였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아내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뭉뚝뭉뚝 묻어나는데,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시인 아내의 절창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부부가 나누는 지극한 사랑이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라는 기도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만, 이만한 기도를 물리치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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