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by 한종호 2021. 3. 22.

 

 

 

 

 

지금이야 대부분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치(寸), 자(尺), 척(尺) 등 지금과는 다른 단위를 썼다. 거리를 재는 방법도 달라져서 요즘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도 기계를 통해 대번 거리를 알아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측정법이 좋아져도 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하늘의 높이나 크기를 누가 잴 수 있을까. 바라볼 뿐 감히 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기 손에 자 하나 들었다고 함부로 하늘을 재고 그 크기가 얼마라고 자신 있게 떠벌리는 종교인들이 더러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잴 수가 없다. 기쁨과 슬픔 등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잴 수가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잴 수 없고, 재서는 안 되는 것 중에는 사랑도 있다. 때로는 궁금한 마음에, 때로는 욕심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재려 할 때가 있다. 어떤 땐 내게 주는 사랑의 정도가 궁금하고 어떤 땐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손해 아닌가 사랑을 재려 할 때가 있지만 결국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랑이 길거나 짧다 생각하는 것은 모두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강물처럼 흘러가도록 두어야 한다. 스스로 숨을 쉬며 자라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윽해 진다. 재기 시작하는 사랑은 서서히 질식하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사랑초서>는 절창이다 싶다.

 

떫은 사랑일 땐

준 걸 자랑했으나

익은 사랑에선

눈멀어도 못다 갚을

송구함뿐이구나

 

-김남조 <사랑초서>(53)

 

‘사랑은 정직한 농사

이 세상 가장 깊은데 심어

가장 늦은 날에

싹을 보느니’

 

-김남조 <사랑초서>(83)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 중에서

 

한희철/동화작가, 정릉교회 목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