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9)
잊을 수 없는 만남
그날 밤 그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먼 곳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에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권사님의 아들이 다쳐 수술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대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권사님을 만난 것은 수술실 앞이었다. 순대 만드는 일을 하는 아들이 기계를 청소하던 중에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기계를 멈췄을 때는 이미 손이 많이 으스러진 상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듣는 내가 그러니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수술실 앞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 무겁게 흘러갔다. 어느 순간 중 권사님이 당신 살아오신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 했다. 참으로 신산(辛酸)했던 삶, 권사님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당신이 살아오신 지난 시간을 모두 이야기했다. 얼굴이 고우셔서 누가 보아도 이 분께 무슨 근심걱정이 있을까 싶은데, 권사님의 인생은 굽이굽이 눈물어린 가시밭길이자 험곡(險谷)이었다. 권사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눈물에 젖은 내용들이었다.
아들이 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앞에서 담임 목사에게 털어놓는 지난날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나는 권사님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다.
“부족한 사람을 믿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제 마음에만 담아 둘게요. 그리고 권사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늘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권사님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권사님은 제게 여전히 소중한 분입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진 이야기,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내게는 화인처럼 남아 있다. 권사님도 그러시지 않으실까 싶다. 이야기 속에는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법,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이 부디 상처와 아픔과 회한을 덮는 따뜻한 위로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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