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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사람이 소로 보일 때

by 한종호 2019. 6. 1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0)

 

 사람이 소로 보일 때

 

전해져 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사람이 이따금씩 소로 보일 때가 있었다. 분명 소로 알고 때려 잡아먹고 보면 제 아비일 때도 있고 어미일 때도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 번은 한 사람이 밭을 갈다가 비가 쏟아져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웬 송아지가 따라 들어오더란다. 돌로 때려 잡아먹고 보니까 웬걸, 자기 아우였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엉엉 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괴로운 마음에 보따리를 싸들고 길을 떠났다.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만 보이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넓은 세상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강물에 떠내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 호랑이의 밥이 될 뻔도 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어느 날 파란 바람이 부는 한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곳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보아 잡아먹는 일 없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바로 마을을 만난 것이었다.


 

 

나그네는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없으니 희한하군요.” 그러자 그 노인은 껄껄 웃으며 “웬걸요. 우리도 옛날에는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이따금 있었는데, 사람들이 파를 먹으면서 눈이 맑아져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소가 소로 보여서 그런 일이 없어졌답니다.” 하는 게 아닌가. 나그네는 파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노인은 그를 데리고 파밭으로 가서 파를 보여주었는데, 파 씨를 얻은 나그네는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자기 집 텃밭에 파 씨를 심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만나려고 이웃의 친구들이 찾아오자 반가운 마음에 “어서들 오시게. 내가 보고 온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지.” 일어서서 맞이하려는데 친구들 눈에는 그가 소로 보였다. “웬 소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군!” 하면서 도끼를 번쩍 드니 “아니야, 나는 소가 아니라 자네들의 친구일세.” 소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친구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후 텃밭에서는 파란 싹이 돋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향기에 이끌려 파를 뜯어먹었다. 그런데 파를 먹은 사람들은 눈이 맑아져서 더 이상 사람을 소로 보는 일이 없어졌고, 그 후로는 아무도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하는 힘이 어찌 채소 파에 있을까, 필시 파를 먹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소로 보고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시간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이다. 잃어버린 눈물을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으로 존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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