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덴세와 조탑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7)

 

 

 오덴세와 조탑리  
  

독일에서 살 때 몇 분 손님들과 함께 덴마크를 다녀온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9시간 정도를 달리자 덴마크 땅이었다. 동행한 분들은 아무런 검문이나 검색 없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너무나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덴마크를 찾은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오덴세 방문이었다. 오덴세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향이다. 클림트와 모차르트를 빼고 비엔나를 생각하기가 어렵듯이, 오덴세 또한 안데르센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는 도시였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안데르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데르센이 죽었을 때 덴마크의 모든 국민들이 상복을 입고 애도했을 만큼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니 당연한 일이겠다 싶기도 하다. 


안데르센 기념관에는 안데르센에 관한 온갖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가 그렸던 그림들과 종이를 오리는데 사용한 가위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밧줄도 있었는데, 사연이 재미있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안데르센은 언제라도 화재가 나면 밧줄을 타고 탈출하려고 늘 밧줄을 챙겨 다녔다는 것이다. 


넓은 잔디밭에 조성된 야외공연장에서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었다. 세계 각처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물론 주변에 사는 이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나와 잔디밭에 편히 앉아 안데르센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나는 전시관에 놓인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이야기 속에는 꿈이 있네요. 사랑도 있고요. 왜일까요, 이곳에서 권정생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건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는 작은 흙벽돌집이 있다. 창고라 해도 허름해 보이는, 지극히 작고 낡은 흙벽돌집이다. 그 집의 주인은 지금 집에 없다. 방에 들어온 생쥐한테도 먹을 것을 나눠주는 삶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이다. 시골교회 예배당 종지기로 살면서 자기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것들을 눈물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며 빛나는 동화를 썼던, 바로 권정생이 살던 집이다. 


 


 

이번에 경북북지방 연합성회를 인도하기 위해 영주를 다녀오며 그곳 목회자들로부터 권정생 이야기를 들었다. 권정생은 정말로 비렁뱅이였다고 한다. 폐병이 든 거지여서 지금도 권정생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를 문전걸식을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종을 치는 조건으로 일직교회 구석방 하나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마음 아픈 이야기도 있었다. 권정생이 남긴 전 재산과 그 앞으로 나오는 인세 모두를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 쓰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결국은 권정생 기념관이 조탑리에 세워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덴세와 조탑리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극과 극처럼 다르다. 권정생에겐 차라리 덩그마니 버려진 듯 남아 있는 조탑리 흙집이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프고 슬프다. 외롭고 불쌍한 것들 품고 살더니, 끝까지 외롭고 불쌍한 권정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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