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5)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예쁜 찻잔을 보면, 순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먼저 마음으로 가만히 비추어 봅니다. 찻잔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색의 원을 천천히 그려보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가짐으로 인해 지구 한 켠 누구 하나는 못 가질세라. 희귀하거나 특별한 재료보다는 주위에 흔한 흙이나 나무 등 자연물로 만든 찻잔인가.
나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오는 손님이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내놓을 수 있는 평등한 찻잔인가. 간혹 놀러온 어린 아이에게도 건넬 수 있는, 설령 깨어진대도 아까워하거나 괘념치 않을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만약에 깨어진대도,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후손에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자연물의 찻잔인가. 이렇게 찻잔 하나로 사색과 묵상의 둥근 그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찻잔을 만든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입니다. 단지 돈과 생산만이 유일한 상위 목적이 되어 만든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애써 잘 보이기 위해 기교를 부려 억지스레 만든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그 찻잔에는 그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그 파장은 알든 모르든 사용하는 이의 마음에까지 어딘지 불순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흙과 찻잔이 좋아서 즐겁고도 무심한 듯 평온한 순간의 마음으로 빚은 것이라면, 사용하는 마음에도 알든 모르든 좋은 파장이 전해져 평화로운 마음이겠다 싶은 것입니다. 이어서 찻잔의 형상을 그대로 따라서 선을 그려봅니다. 잔잔한 마음으로. 마음에 비추어 보고 또 비추어 보는 무심한 일.
이런 사색과 묵상이 좀 별스럽고, 쓸데없는 짓이라 탓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이런 사색이 제게는 습관이 되버렸기도 하지만, 경험상 손해보다는 유익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내면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러한 사색과 묵상의 힘은 때때로 일상 생활과 일터에서 창의력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누군가는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느리고 퇴행적이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사색과 묵상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바쁜데, 할 일도 많은데, 그럴 시간에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뭔가 눈에 보이는 일로 소중한 일상을 채우는 게 더 낫지 않나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런 시간 밖에 시간, 사색과 묵상으로 깊어지는 시간은 그대로 기도와 예배로 이어집니다.
비로소 마음을 내는 일, 마음을 주는 일이 되니까요.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만나는 길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는 일. 내면을 의미로 채우는 일은 마음과 영혼을 채우는 일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재미는 덤으로 따라올 테지요. 이런 시시해 보이는 사색과 묵상을 즐기게 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영 먼나라의 얘기는 아닐 테지요.
이렇게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찻잔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은 스르르 저절로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고도 꼭 필요하다면 사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음으로 인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따뜻하고 잔잔한 평온함이 제겐 더 소중하니까요.
소유하지 않음으로 잠시 마음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여백이 있습니다. 그 빈 가슴에 시원한 바람 한줄기 무심히 지나고, 따뜻한 햇살 한줄기 은혜비처럼 내리면 마음은 괜히 따뜻하고 즐거워 혼자서도 실실 실없는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발길에 흔한 마른 강아지풀이 귀엽고, 겨울날 새벽아침 출근길에 하얀 서리가 보석보다 반짝이는 모습이 생생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소소한 감사가 되고, 소박하고 행복한 노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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