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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묵묵히 깊이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

by 한종호 2019. 12. 11.

신동숙의 글밭(29)

 

묵묵히 깊이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

 

링링, 타파, 미탁. 지난 가을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의 이름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바람이 크게 불고, 강수량이 많았던 가을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강변 마을 인근에도 침수를 우려한 차량 대피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로 세 번의 태풍은 태화강의 많은 생명들을 거세게 지우며 지나갔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태화강변. 그동안의 수고로운 손길을 뿌리 치듯 남은 것이라곤, 뿌리까지 뽑혀 쓰러진 나무들, 진흙탕이 된 강변둑, 심지어는 껍질이 벗겨지듯 바닥이 뜯겨져 나간 산책로의 허망한 모습들 뿐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속수무책. 올해 가을 비로소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태화강. 행사 지구가 가을 국화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반면, 상류 지역은 중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겨우 쓰러진 나무와 진흙탕이 된 길의 윤곽만 걷어냈을 뿐입니다.

 

울산시에선 계절마다 마당의 정원을 가꾸듯 태화강변을 가꿉니다. 강변길을 따라서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제게도 커다란 행운이고 행복입니다. 양귀비, 작약, 무궁화, 해바라기, 금계국, 초롱꽃, 코스모스, 황하 코스모스, 국화. 강변길을 따라서 철쭉, 오디 나무, 배롱나무, 봄이면 화사한 벗꽃이 산책길의 벗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길. 저만치 수풀에는 백로가 한가롭고, 오리 식구들이 정겹게 살아가는 집.

 

하지만 태화강변은 큰 비가 오면 침수가 됩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시멘트로 강둑을 덮어버리지 않은 지혜롭고 어진 선택에 늘 마음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해마다 태화강을 지켜보면서 자연의 거대하고도 섬세한 흐름을 느낍니다. 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하늘에 맘껏 상상력과 마음을 펼쳐 놓을 수 있는 곳. 다 슬고간 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풀이 돋아 오르고 꽃이 피어나는 태화강국가정원은 생명이 살아서 숨 쉬는 땅입니다.

 

 

 

 

뻘에 묻혀 있던 뿌리가 뽑힌 나무들을 걷어내고도 한참의 시간
이 흘렀습니다. 그 중 유일하게 건재한 나무가 바로 대나무입니
다. 해가 뜨는 동해 쪽으로 살짝 기울긴 했어도 뿌리가 뽑히지 않은 대나무.
 
겨울이 가까워지고부터 강변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새로 대나무가 심겨진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잦은 침수와 범람에 태화강을 살리는 대책은 크고 작은 대나무를 심는 일. 태화강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십리대밭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심어 놓은 어린 대나무 앞에 붙여진 나무 팻말. 태화강 백리대밭.
산시의 생태친환경적인 알찬 계획을 엿보면서 내심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생명들과 함께 가는 그 걸음이 기쁘고 뿌듯하고 감동스럽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대나무는 그 뿌리가 깊습니다. 3년 동안 땅으로 뿌리만 내린다는 대나무. 성장이 보이지 않는 3년 동안의 기다림. 그 어둡고 지난한 시간을 거친 후 비가 올 때마다 무섭게 키가 자라는 대나무. 깊이깊이 땅 속으로 침잠하며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특성이 있습니다. 풀꽃 같이 여린 사람, 배롱나무 같은 사람, 코스모스를 닮은 사람. 심지가 깊어 자칫 강직해 보이는 사람, 개성 만큼이나 다양한 우리네 삶입니다. 누구나 다 대나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흙뻘에 묻혔던 여린 풀꽃이 다시 피어 오르는 모습에서 오히려 풀꽃의 강인함을 봅니다.

 

한가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 중에는 그 뿌리가 대나무처럼 깊은 고마운 이들입니다. 꽃처럼 화사하지 못해 평소엔 눈길을 끌지 못하는 대나무.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안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이들. 묵묵히 깊이 진리에 뿌리를 내리는 곧은 이들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온갖 사건 사고의 잦은 범람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진리의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보이지 않는 신앙인, 생활인, 농사를 짓는 이들. 소박하고 단순한 삶 속에서 자연과 학문과 예술로 내면의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이들. 스스로 깊어짐으로 일상의 삶이 예술이 된 이들. 유행을 따라가는 표류하는 삶이 아닌, 자연과 진리와 자기 자신이 길이 되어 고독 속에 침잠하는 이들.

 

이렇듯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이들이 어쩌면 세상의 흐름 속에서 때론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근원을 향한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닌지. 이 땅과 우리 내면의 땅을 지켜주고 있는 파수꾼이 아닌지 생각해 보는 숙연한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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