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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by 한종호 2019. 12. 12.

신동숙의 글밭(30)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볼에 닿는 햇살이 따사로운 겨울날 오후다. 양짓녘엔 봄인 듯 초록풀들이 싱그럽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 금빛 마른풀에선 맑은 소리가 들릴 듯 말듯 울린다. 지난 며칠간 매서웠던 추위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저절로 녹아서 걸음마다 한겹한겹 마음이 열리는 평온한 날씨다.

 

날씨가 포근해서일까. 학원 중간에 시간이 남았을까. 모처럼 개천에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떠드는 것처럼 또랑또랑 들려온다.

 

뭘 하는가 싶어서 다리께에서 가만히 내려다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갈 뿐 오히려 다리 중간에 멈춰 선 내 모습이 어색한 그림이긴 하다. 하지만 내게는 자연 속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정겨운 그림이다. 이 아름답고 재미난 광경을 무심히 지나칠 수는 없지. 지금쯤 학원에 있을 아들 연배로 보이는 사내 아이들. 아들을 데려다가 저 무심하게 행복한 그림 속 한 명으로 등장시키고픈 충동까지 인다.

 

 

 

자연 속에 아이들은 언제나 행복해 보인다. 무심코 어린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을 그 어떤 아픔과 슬픔도 자연은 만져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람결이 물결이 부드러운 손이 되어 슬어주고, 함께 놀아주고, 햇살이 따스하게 다독여주고, 하늘이 저 커다란 품으로 안아주리라는 자연에 대한 믿음이 있다.

 

물이 둥글게 퍼져 나간다. 잠시 후 한두 명의 아이가 몸을 구부렸다가 일으키며 잠시 몸을 뒤로 빼고는 팔을 크게 휘둘러 앞으로 휙 던진다. 그렇게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누가 가르쳐 줬을까.

 

예전에 가끔 우리 아이들이 순간 신나는 표정으로 물 속에 돌을 던지려 들면 말리곤 했다. 무심코 던진 돌에 작은 생명이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에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대꾸를 해온다. 그럴 때 엄마의 대답은 혹시나 만일에 한 생명이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면 알아들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돌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고 돌아서면 또 금새 잊어버리지만.

 

만일의 그 한 생명. 세월이 갈수록 조심스러운 이유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무심한 눈길 하나라도. 그 단 한 생명을 염두에 두게 된다. 예수의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가 어쩌면 그런 마음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리를 두고서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던 예수의 심정을 해처럼 내 가슴에 떠올리는 일. 두고두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된 말씀. 그리고 여전히 나는 세상이 조심스럽다.

 

물 속 송사리, 민물새우, 다슬기가 무사하기를 비는 마음을 바람결에 띄워 보낸다. 서산으로 기우는 노을을 배경으로 물이 빠져 나간 개천에서 놀고 있는 개구쟁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정겨운 한 폭의 그림이다. 다름없이 아들 손을 잡고 나도 당장이라도 저 속에 뛰어 들고픈 그리운 내 어릴적 그림이다.

 

어쩜 저렇게 아이고 어른이고 한결같이 물가에선 물수제비를 뜨고 싶어할까. 알 수는 없지만, 그 조차도 물 속이 궁금하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물이 그리운 건 아닌지. 그 마음의 출렁임을 누군들 막을 수 있으랴.

 

물수제비 포물선은
한순간인데

 

동해에서 떠올라
마을 위를 지나며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포물선은
꼬박 하루해가 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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