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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검과 몽치

by 한종호 2019. 12. 2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5)

 

검과 몽치


 
그 때 그 순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둠을 밟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무리들, 그들의 손엔 검과 몽치가 들렸다. ‘검과 몽치’라는 말은 ‘칼과 몽둥이’라는 말보다도 원초적이고 음험하게 들린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검과 몽치만이 아니었다. 등과 횃불을 빠뜨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분을 붙잡기 위해 그들은 어둠 속에서 등과 횃불을 밝힌 채 다가온다.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기름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그 모든 것에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보태진다. 횃불보다도 더 강렬했을 눈빛들, 예수가 붙잡히던 그 밤 그 동산에는 온통 광기가 가득하다. 예수의 말씀대로 난폭한 강도를 잡는 현장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자기 방식대로 생각을 한다. 자기 방식대로 판단을 하고 행동한다. 검과 몽치를 들었던 무리들은, 예수와 제자들도 검과 몽치를 들고 대비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거칠게 저항할 것이라 짐작했을 것이다.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의 검이 있었으니 허황된 생각은 아니다 싶다. 하지만, 예수는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명한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한 마디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리한 칼날처럼 들렸을 것이다.

 
자기를 잡으러 오는 무리 앞에서 보이고 있는 예수의 태도는 수동적이지 않다. 이상하리만큼 능동적이다.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26:46) 예수는 그렇게 스스럼없이 당신의 길을 간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한 사람을 두고 그를 붙잡으려 하는 이들은 검과 몽치를 들고 온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들고 있는 검과 몽치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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