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6)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내게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남은 구절 중에는 윤동주의 ‘서시’도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지위나 재산 등이 아니라 사소한 것, 의외의 것, 예를 들면 말 한 마디나 어투, 그가 보이는 몸짓이나 태도 등이 그의 존재를 충분히 말할 때가 있다. 윤동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는데 내게는 이 한 구절이면 족하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사랑하려고 했던, 사랑과 사랑하려 했던 사이를 부끄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이었다. 예배당과 별관 사이에 있는 중정에 몇 가지 허름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교회 안에 있는 비품 중에서 버릴 것들을 모아둔 것이었다. 지나면서 보니 의자가 있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의자였다. 누군가가 흰색 페인트를 칠해서 촌스럽게 보였다. 무슨 이유였을까, 괜히 마음이 가서 의자를 집어 드니 허술하기 그지없다. 연결부위 곳곳이 약해져 힘도 쓰지 못할 의자였다.
그러는 걸 집어 들고 목양실로 가지고 왔다. 한쪽 구석에 놓아두니 볼 때마다 마음이 편했다. 이정록 시인의 시가 생각나기도 했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로 마치는 <의자>라는 시 말이다. 겨울에도 붉은 꽃을 피운 화분이 있어 의자 위에 올려두었더니 제격이다. 서로가 잘 어울렸다.
‘serendipity’라는 단어를 나는 샘 키인의 <춤추는 신>에서 만났다. 그 말의 의미는 단어를 닮아 뜻밖이었다. ‘우연한 것, 하찮은 것 속에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내는 눈 혹은 그런 능력’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럴 듯이 살아있는 것보다도,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일이다. 죽어가는 것들은 눈여겨보아야 보인다. 마음이 담겨야 손이 닿을 수가 있다. 새로 받는 한 해, 그리고 남아 있는 삶을 바라보며 다짐을 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 가는 향기 (2) | 2020.01.03 |
---|---|
가라앉은 목소리 (6) | 2020.01.01 |
수처작주(隨處作主) (4) | 2019.12.30 |
검과 몽치 (2) | 2019.12.29 |
나는 아직 멀었다 (4) | 2019.12.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