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
단무지 한 쪽의 국위 선양
이 이야기는 30년 직장 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직 후 중국 단체여행을 다녀오신 친정아버지의 실화입니다. 정해진 일정을 따라서 들어간 호텔 뷔페에서 어김없이 새어 나온 아버지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드실 만큼 조금만 접시에 담아오셔서 배가 적당히 찰 만큼만 드시고는 다 드신 후 접시에 묻은 양념을 단무지 한 쪽으로 삭삭 접시를 둘러가며 말끔히 닦으신 후 입으로 쏙 넣으시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던 중국 뷔페 식당의 직원이 마지막 마무리까지 보시고는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짝짝짝 박수까지 쳤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한화로 1만원 정도의 팁을 건네시고는 일행들과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를 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국의 호텔 뷔페 직원이 배웅까지 나와서 아버지의 한국 여행객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도 손을 흔들어 주시고, 이제는 들어갔는가 싶어 돌아보면 또 그 자리, 또 뒤돌아 손을 흔드시며 그렇게 국경을 넘어 아름다운 모습이 한 순간 그려졌다고 합니다.
(생전에 이뻐하시던 손녀, 신지우가 제주도에서 담은 소나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 크고 많은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행동 하나, 말투, 손짓, 눈길 등 지극히 사소한 곳에 있음을 다시금 봅니다. 오히려 크고 거창한 모습 앞에선 감동보다는 놀람에 가까운 감정이 들곤 합니다.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와 천둥 소리에 깜짝 놀라는 인간이 밤 하늘 먼 별 하나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마음까지 맑아지곤 합니다.
아버지 생전에 밥상에 앉으시면, 밥 한 톨과 농부의 땀을 늘 반찬 삼아 밥상에 올리시곤 하셨답니다. 어려운 시절 가족들을 여의셨기에 제겐 고모와 삼촌이 없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던 장례식에는 사돈의 팔촌의 며느리까지 먼 데서 찾아오셔서 인사를 하셨고요.
자신에겐 누구보다 엄격하셨던 분. 남해에 있는 집안의 가족 납골당으로 모시고 가던 단체 버스 안에서, 큰 할아버지의 아들인 동갑내기 작은 아버지께서 앉으신 좌석에서 뒤돌아 보시며 하신 얘기가 기억납니다. "우리 부락에서 너거 아버지한테 인사 안 받은 집은 한 집도 없을끼다. 그래서 내가 다들 그냥 있으면 안 된다고, 아침에 마을에 방송하고 오던 길이다." 어버지 어린 나이에 떠나오신 고향입니다.
어릴 적 여름날 기억은 다 잊었는데 매미 소리만 기억난다고 하시던 고향, 아홉살에 나뭇짐 해오시느라 엄지발가락이 자라지 못하신 얘기, 누렁소 꼴을 먹이시던 이야기에는 소가 참 어질다고 하시면서 소처럼 예쁘고 맑은 눈을 지그시 감기도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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