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핸드폰족 아들과 함께 명상의 집으로

신동숙의 글밭(56)


포노 사피엔스, 핸드폰족 아들과 함께 명상의 집으로



핸드폰으로 하루의 빈 틈을 채우려는 겨울방학 중 아들입니다. 급기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맨 처음 인사말이 "아빠! 핸드폰은?"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백을 채운 공기처럼 아이들의 삶 속에 호흡처럼 따라붙는 핸드폰. 무슨 수로 떼어낼까 싶어 마음이 무겁다가도, 이내 그 핸드폰 자리를 진리의 하나님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햇살 한 줄기의 소망을 품어보는 아침입니다. 


그리고 핸드폰은 단지 그 순례길에 좋은 조력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희망이 지금은 비록 겨자씨 만큼 작더래도 가슴에 심겨진 한 알의 씨앗은 알게 모르게 자랄 테니까요. 언젠가 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 하늘빛을 살피며, 밤새 어두웠을 가슴에 빛의 하나님을 태양처럼 떠올리는 자녀의 고요한 아침을 그려봅니다.


도심 속 자연, 숲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움터인 '분도 명상의 집'을 어떻게 찾아갈까 궁리를 하다가 아들을 데리고 가기로 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핸드폰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는 걸 아들은 압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심심함을 선물로 주고픈 그런 마음입니다. 그 무료함의 터널을 지나온 후 비로소 만나게 되는 내면의 소리가 있습니다. 일상의 삶을 창의성과 영성으로 열어줄 심심함과 텅 빈, 선물처럼 주어지는 그 시간 속의 시간. 심심함이 때론  영혼이 보내오는 초대장이 되기도 하니까요.


안 가겠다는 걸, 달래기도 하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구슬렸더니 이온 음료 한 통을 손에 쥐고서 겨우 차에 탑니다. 전날부터 종일 내리던 겨울비에 오전까지 흐리던 하늘입니다. 점점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구름 사이로 언뜻 맑고 푸른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문득 마음만 먹었을 뿐 주저했던 여정이라 구름 사이로 조금씩 내려주시는 햇살의 은혜가 잔잔히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소나무, 대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사이 사이 함께 자라고 있는 숲. 일부로 그렇게 심어 놓은 듯한 처음 보는 풍경입니다. 생소하지만 문득 소나무의 청정함과 대나무의 곧음이 조화로운 맑음으로 다가옵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스승과 벗처럼 숲길로 오르는 발걸음마다 단단하던 가슴을 한 겹씩 열어줍니다.  


대나무 곁에 선 소나무는 곧게 뻗어 있습니다. 소나무가 곁에 있어 댓바람 소리가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대나무와 소나무는 서로에게 좋은 벗이고 스승인 듯 그렇게 함께 서 있습니다. 골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기도를 해오지만, 문득 숲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청정한 곳, 그러한 도량에 호젓이 앉았다 오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고요한 순례길에 동행자는 포노 사피엔스, 핸드폰족 12살 아들입니다.


TV로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아들을 떼어 놓고 오려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더 크기 전에  고요함의 씨앗을 심어주고픈 그런 의도가 숨어 있었지요. 명상의 집 둘레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띄엄띄엄 십자가 예수의 형상이 새겨진 돌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들은 오솔길을 산다람쥐처럼 뛰면서 앞서 갑니다. 그러다 잠깐 멈추고 뒤돌아 보며 어서 오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다가 땅에 떨어진 솔가지를 주워 팽팽 칼싸움을 하자며 건넵니다. 핸드폰 대신 솔가지를 손에 잡았으니 반갑게 맞이해야지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선 느닷없이 국민체조를 합니다. 우리들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건물 안엔 수도자들이 기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며 귀띔을 해줬더니, 순간 동작을 멈추고 여러 창문들을 향해 시키지도 않은 배꼽인사를 넙죽 건넵니다. 식은땀과 안도의 한숨이 소나무와 대나무 사잇길 겨울바람처럼 엄마의 가슴 사잇길로 교대로 스치며 지나갑니다.


엄마가 원하는 건, 그저 고요하게 머물러 앉아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의 기도. 언제쯤 이곳에서 홀가분한 몸으로 그런 고요한 침묵의 기도 속에 머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또한 홀연히 그런 날이 올 테지요. 명상의 집 초입, 돌에 새겨진 '너희는 멈추고 하나님 나를 알라'(시편46)를 다시금 가슴에 새기며 떠나오려는데, 트렁크 문이 열려 있습니다. 아들에게 트렁크 문을 좀 닫아 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뜻하지 않은 배드민턴 채를 꺼내옵니다. 


그저 멈추고 싶었던 곳에서 원치 않는 배드민턴 깃털 공을 쳐야 했던 이유는, 아들의 기억 한 켠에 그렇게라도 명상의 집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문득 고요히 멈추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해처럼 떠오르는 예수의 말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장 15~17절) 이 한 말씀의 생명력이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물처럼 차오르며 어느 새 온몸을 따스하게 감돕니다. 겨울바람 속에 배드민턴의 깃털 공은 자유로운 새처럼 자유로운 아들처럼 이리저리 나부낍니다. 대부분 맞추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떨어진 깃털 공들을 주우면서도 가슴엔 평온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어설픈 우리의 여정 가운데 만져 주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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