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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by 다니엘심 2020. 1. 22.

신동숙의 글밭(62)


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옥수수를 삶고 있는데, 골목에서 아이들 소리가 떠들썩하다. 세 살 난 딸아이도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모처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잔칫날 같다. 압력솥에 추가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에 조바심이 다 난다. 다행히 아이들은 멀리 가지 않고 우리집 앞 공터에서 이리저리 놀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옥수수를 뚝 반으로 쪼개고, 나무젓가락을 쪽 반으로 갈라서 옥수수를 하나씩 꽂아 쟁반에 담아서 골목으로 나갔다. 핫도그 모양으로 젓가락에 꽂은 옥수수를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면서 나이와 이름을 묻는다. 네 살, 여섯 살, 1~2학년, 키가 제일 큰 아이가 5학년이란다. 다들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말이 반갑다. 옥수수 먹으면서 놀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새로 이사온 우리집 마당과 집안이 궁금했는가 보다. "아줌마~ 들어가 봐도 돼요?" 하길래, "그래" 했더니, 집안이 사내 아이들로 북적북적하다. 딸아이가 제일 신났다.


그 후로도 골목에서 마주치면 우리들은 서로가 먼저 말을 붙이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도 대문 밖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예원아~ 노올자" 하며 종종 동생네 집으로 놀러 오곤 했다. 오빠야들이 놀러오는 날엔 딸아이는 신이 난다. 그런데, 너무 신이 난 나머지 한 살 많은 오빠야의 얼굴을 순식간에 꼬집어 그 집 엄마가 우리집으로 찾아온 일도 있다. 귀한 작은 아들 입가에 상처가 나서 들어온 게 속상해서 오긴 왔지만, 덩치가 저보다 작은 딸아이를 보고는 혼을 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


대여섯 명의 동네 아이들은 둘씩, 셋씩 서로가 형제라고 한다. 게중에는 키가 제일 큰 5학년 태현이, 그 밑으로 태호, 태경이 삼형제가 있었다. 골목에는 ㄱ 자 굽은 허리로 리어카에 폐지를 모르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누가 인사를 건네나 싶어 겨우 고개만 드시고, "예"라고 대답만 하실 뿐, 한 번도 허리를 펴신 모습을 뵌 적이 없는 어르신이다.


태경이네 할아버지인 줄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태경이 형제가 놀러 와서 마루에서 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께서 용돈을 마련하시려나 보다." 했더니, 태호가 가만가만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우리 키워 주시려고 돈 버는 건데요." 한다. 나는 순간 대답이 막혀서 "엄마는?" 하고 이어서 물었고, "같이 안 살고 왔다갔다 하시는데요." 한다.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는데도 순간 나온다는 말이 "엄마는 뭐를 좋아하실까?"였다. 태호는 "우리 엄마는 가마솥 갖는 게 소원이래요." 한다. 


십 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가 오늘 일처럼 생생한 것은, 태경이 때문이다. 나무젓가락에 꽂아준 반쪽 옥수수를 먹던 때가 태경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멈추고 "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를 해오던 아이. 태경이가 6학년이 되던 어느 여름 날. 동네에는 소방차가 왔고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아이가 강물에 빠졌는데, 찾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누구집 자녀인지 몰라서 부모를 찾는다 했고, 아이의 할아버지가 폐지를 줍는다는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더운 여름날 방과 후에, 새로 생긴 돌다리 옆 수풀을 따라서 난 강물에서 다이빙을 하며 물놀이를 하던 사내아이들. 거센 물살에 혼자만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가 6학년 태경이였다. 한참의 수색으로 몸을 건졌지만 숨은 돌아오지 못했다. 운구차가 운동장을 한바퀴 돌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음날 나는 혼자서 처음으로 새벽 기도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나도 새신자 등록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살아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기도로 구했다. '예수 영접'. 그렇게 7일 동안 새벽기도를 드렸다.


그날 낮에 마을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찾았고, 태경이 얘기를 했더니,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얘기가 지금도 고맙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느 집사님이 태경이를 한 달 전에 전도를 했었고, 한 달 4주간의 새신자 교육을 마치고, 예수 영접을 받고는 직후에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다 헤아릴 수 없는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곳은 그렇게 예수의 품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시던 예수.





지금도 동쪽으로 강변을 산책하려면 새 다리를 지나야 한다. 십 년도 전에 놓은 새 다리지만 여전히 새 다리로 불린다. 한 번 입에 붙은 이름이라 바뀌질 않는다. 그 새 다리를 지날 때면 나는 한 번도 태경이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다. 아직도 나는 그쪽 강물 곁으로 가지 못한다. 소심해서 사고 지점을 자세히 바라보지도 못한다. 다만 새 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다 지나는 동안만이라도, "태경아, 태경아" 속으로 이름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로 예수님을 부른다. 그 분 품으로 맡긴다.


그렇게 한 순간 어린 목숨을 데려간 강물이지만, 나는 한 번도 강물을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강물은 여전히 흐를 뿐이다. 새 다리를 지날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태경이를 애써 지울 이유도 없고, 지우려고 한 적도 없고, 그리고 여태껏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게 할 뿐이다. 그렇게 내 가슴을 슬고 지나는 어린 영혼을 예수에게로 인도할 뿐이다. 끊이지 않는 호흡처럼 그렇게 슬픔의 강물이 평온히 흐르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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