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9)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모처럼 찾은 산동네, 다들 바쁜 일정 중에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중국집에서 시켜 먹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걸어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데만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한 이 까꼬막을 오토바이가 올라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자칫 뒤로 자빠질 것 같고,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배달을 해야하는 사람은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크고 밝다는 의미의 우리말 옛이름은 '배달'입니다.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달의 민족을 배웠다면, 오늘날 초등학생들은 매스컴에서 듣고 또 듣는 이름 '배달의 민족'. 광고의 요지를 보면, 어디든 달려 가고, 무엇이든 배달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더 편리할 수 없는 자본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제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합니다.
저녁답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주부의 모습이 귀합니다. 얼마 이상 주문을 클릭하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집 앞까지 배달이 되니까요. 아파트촌과 평지 마을이 배달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십니다. 생계를 위해 배달을 해야하는 이웃들에게 산동네의 까꼬막은 어떤 무게로 다가갈까를 두고 묵상을 합니다.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던 예수의 마음을 제 어둔 가슴에 해처럼 떠올려서 잠시나마 산동네와 배달음식, 택배 문화를 비추어봅니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청년들의 잔뜩 움츠러든 몸과 피어나지 못한 체 접혀 있는 씨앗 같은 마음을 묵상합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도 먹거리부터 생계가 해결 되기에, 연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한지, 삶이 행복한지, 가치와 의미를 먹고 살아야 하는 영혼이 배달 음식으로인해 자유로움을 얻는지. 자본주의가 낳은 편리함이라는 두터운 이불 속에 갇혀 연명하고 있는 젊음. 젊은 육체의 세포들을 알알이 깨어나게 해줄 한 줄기 햇살을 구합니다.
자본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산골이나 시골로 들어가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행복을 찾았다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한 줄기 맑은 바람처럼 가슴으로 불어옵니다. 언젠가 불어온 푸른 바람과 밝고 따스한 햇살이 피부에 닿았던 느낌을 기억한다면, 마음까지 가벼워져 겨드랑이께로 날개가 돋힌 듯 홀가분해지던 느낌을 몸이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내리는 빗물이 산비탈 마을의 낮아진 웅덩이마다 고여서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햇살이 포근하게 깊은 곳까지 감싸 안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르내리는 걸음마다 부디 안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좁다란 오름길에 봄이 오고, 오르락내리락 가쁜 숨을 고르어 평온히 걸으면 집집마다 틈새마다 피어난 색색깔꽃들이 눈맞춤하며 반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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