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73)
아침에 과일
과일 깎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빨간 사과, 묵직한 배, 주황색 귤이 아침해를 닮았습니다. 가끔 냉장고에 두부나 계란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은데, 돌아보면 저희 집엔 사철 내내 과일이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과일은 바쁜 아침 부족한 끼니를 채워 주기도 하고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배를 채워 주기도 하지요. 혼자 점심을 깜빡 잊기도 하는 날엔 아침에 먹다 남긴 과일 몇 조각이 반갑습니다. 여섯 살 아들 입에서 넋두리인 듯 새어 나오던 말이 있습니다. 울 엄마는 돈 있으면, 은행 가고, 과일 사고.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한답니다. 사람의 몸이 과실과 채소만 먹고도 든든히 살아갈 수 있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음식이 과일이었다면 하고요. 꽃이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피워 준다면, 과일은 마음과 몸까지도 환하게 피워 주는 양식이 되니까요.
대체로 국산 과일은 동글동글 생김새도 순하고요. 빨주노초파남보 다채롭고 조화로운 색들의 향연이지요. 빨간 사과는 일년치의 햇살을 머금고 우리집에 도착한 작은 태양이 됩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귤, 배, 사과를 입 안 가득 베어먹으면서 잘 영글은 햇살에 저절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답니다. 형형색색 둥그런 과일 앞에 선 내 마음은 태초의 에덴 동산을 거닐던 하나님 곁에 선 그런 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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