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77)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생충
2020년 2월 10일, 하루 동안 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의 영화제인 오스카에서 4관왕을 받은 일로 온종일 포스팅이 된 날이다. 내 페친으로는 기독교 목사님, 찬양사역자, 불교 승려, 천주교 신부님과 수녀님, 학자, 언론인, 작가, 시인, 농업인, 기업인, 자영업자, 주부 등 거의 각계 각층에 걸쳐서 다양하게 계신다. 페북 연령 제한으로 미성년자 외에는 연령과 계층을 불문해서 초월해 있다. 간혹, 나쁜 포스팅을 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거주 지역도 전 지구에 걸쳐져 있어서 드물게 댓글로 소통하시는 페친 중에는 미국, 하와이, 사우디까지 확장되어 있다. 이렇게 페이스북과 온라인 매체의 전파력과 소통력은 이미 우리들 일상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다.
페친을 맺는 분들은 대부분 자신과 가족들의 소박한 일상의 이야기와 자신만의 생각이나 의견을 올리시는 분들이다. 나는 그런 글들을 꼼꼼히 다 볼 수는 없어도, '좋아요'를 누르기 전엔 아무리 긴 글이라도 읽지 않고는 누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금껏 지켜 오고 있다. 물론, 아주 긴 글은 빠른 속도로 스캔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핵심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한 일로, 이렇게 많은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삶의 자리에 계신 페친분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는 와중에, 마냥 기뻐하기보다는 나는 한 걸음만 더 앞뒤로 좌우로 둥굴게 현상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기생충'이란 영화를 안봤기 때문에 우선 그 영화에 대해선 의견을 내놓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 유명한 영화를 이제껏 왜 안보았냐는 물음에 대해선 짧은 답변을 해줄 수는 있다.
영화를 안본 상황에서 나온 의견이기에 다소 편협되거나, 뜬금없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미리 말씀을 드린다. 특정 계층(그 계층이 경제적 취약 계층을 두고 한 것인지, 자본금융경제체제의 중심부를 두고 지칭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을 두고 '기생충'이라고 영화의 제목으로 취한 점에서 우선 거부감이 든다. 그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사회구조의 모순을 단적으로 드러낸 통찰력 있는 단어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사람을 비하하는 발언은 '말의 자유'에 속하지 못하는 법이다.
자유는 어디까지나 진리 안에서만 온전히 자유한 법이니까. 만약에 특정한 말 한 마디로 인해서, 속박 받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그 말은 누군가에겐 족쇄가 되기도 하니까. 예수라면, 그런 단어를 인간에게 사용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에. 나아가 어린 양 한 마리까지 생각해볼 수 있겠기에. 한 마디의 말, 한 생각을 일으키는 일에는 끝까지 책임감으로 따르겠다는 의지를 지닌 경우에만, 그렇게 나온 말인 경우에 온전히 그 안에서 자유할 수 있는 법이다.
최근에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충'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 '기생충'에서 왔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빌거지, 이백충, 삼백충... 최근의 이 기사를 보고 우리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두리뭉실하게 '그냥 어른'의 잘못이라고만 했다. 나는 구체적으로 그 '한 명의 어른'이 누구인가? 하고 반문하고 싶다. 한 생각을 일으키는 일은 천금보다 무거워야 하는 법이다. 말의 전염성은 핵폭탄급이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법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얼마전에도 한국인이 중국인을 외면하고, 미국과 유럽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바이러스 취급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친구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충'이라고 붙이는 말, 이것은 부모들의 잘못이기에 앞서, 인기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단어라고 생각하게 된 근거가 있다. 그 영화 이전에는 아이들 입에서 태어나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런 영화 하나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매스컴에서 회자되고, 유명한 인기 배우들이 등장을 하고,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급기야 미국에서 오스카 4관왕까지 했다는 것이라면, 그 말의 전염성은 나쁜 물과 공기가 된다. 뛰어난 작품성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샘물 한 줄기가 개천으로 강물로 바다로 흘러 전염되어 퍼져나가는 모습처럼. 난 애초에 그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나온 한 줄기 근원을 본다.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사태를 두고서 사망자 수가 조작 되었다느니, 최근 소식 중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이 잠복해서 아시아에 의도적으로 퍼뜨린 세균이라는 유튜브 영상도 보았다. 그 경제적 후원자로 빌게이츠가 거론이 되었고, 공식 발표한 학자는 자신이 하버드대 교수라면서 자신의 신분과 얼굴까지 공개를 하고 있다. 물론, 이 정보가 거짓 정보일 수 있다는 가정도 염두에 두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깨어서 여러 상황들을 지켜보며 견지하는 입장이다.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왜 하필 우한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겹쳐서, 아시아의 작은 나라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동시에! 아시아 최초로 미국 오스카의 4관왕을 받은 일이 일어난 이상한 일(나는 영화 내용을 모르기에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안한다. 단지 '기생충'이란 말만 염두에 두는 것이다.) 말이다. '코로나와 기생충'은 둘 다 아시아를 가리키고 있다. 지구 끝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역사의 조명은,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극적 장치와 예술성과 작품성에 대해서 얼마만큼 세밀한 관심을 둘까? 의문이다. 대중들이 스치듯 의식과 무의식 중에 기억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혹시, 아시아의 한국 하면, '기생충'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지는 않을까? 중국 우한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오스카 4관왕을 받았다는 이유로 또는 호기심에라도 영화 '기생충'을 봐야겠다는 마음은 지금도 일어나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한 것은 어떻게든 의식 속에 씨앗으로 뿌려지게 되는 법이기에. 한 사람의 사고체계가 무의식 중에 타인들에게로 퍼뜨려지는 전염성은 코로나와 독감 만큼이나 강력한 것으로 스스로가 자각하겠기에.
그 영화의 등장인물이 최고의 배우들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극적 구조가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감독이 천재라고 해도, 오스카에서 10관왕을 받았다고 해도. 전세계인들로부터 일제히 기립 박수갈채를 받는다고 해도, 사람을 칭하기를 기생충이라고 해선 안 되는 법이다. 어린 아이들이 같은 반 친구에게 충이라고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심중에는 한 어른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 서로가 존엄성을 지닌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써. 그런 내 모습이 파도 앞에 모래 한 알일지라도.
어쩌면 전세계의 각 나라들과 역사는 2020년을 중국 우한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아시아 한국의 '기생충'으로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렇게 미국의 조명은 아시아를 비추고 있으니까. 큰 복을 받으면, 거기에 도취 되기에 앞서 왜 내게 주어졌는가를 두고서 거듭 호흡처럼 고민해봐야하는 것이다. 영화의 파급력과 전염성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면. 만일 사회적 책임감은 외면하고, 영화의 파급력으로인한 이득만 취하겠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신종 기생충과 무엇이 다른가!
단 한 사람의 존엄성도 어느 누구로부터도 낮게 지칭되어선 안된다. 그것이 설령 사회적 진실을 통찰한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는 더 나은 새로운 시각, 전 우주까지도 조화와 균형 잡힌 새로운 시각으로 내적 세계를 확장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다. 천지를 창조한 것은 말 한마디였다. 나는 사람을 가리켜 '기생충'이라고 하는 말이 하나도 기쁘지가 않다. 미국이 그 대량 생산·소비와 무기 생산·살생과 현실 탐욕적 손가락으로 아시아를 가리키는 것이 왠지 탐탁치 않은 것이다. 지성과 영성을 갖춘 이들이라면 거듭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을 두고서 헤아려봐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의 사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깊이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아름답기를 원하는 한 생각, 한 걸음이 소중하기에.
페이스북이 항상 묻고 있는 말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신동숙의 글밭 > 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에 맴도는 말에게, 글방을 만들어 주는 일 (0) | 2020.02.15 |
---|---|
김기석 목사님의 365일 날숨과 들숨(1, 2, 3)을 어떻게 읽을까 (0) | 2020.02.12 |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와 촛불 하나 (0) | 2020.02.09 |
내 안에 텅 빈 하늘을 (0) | 2020.02.08 |
아침에 과일 (0) | 2020.0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