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15)
천 번 휘저어 계란말이 만들기의 고요함
하루 온종일 두 자녀와 함께 집 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점점 고요함이 사라져가는 것만 같습니다. 처음에는 틈틈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잠시 방으로 들어가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실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젼 소리와 아들의 박장대소에 고요함은 이내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새벽까지 핸드폰과 마주보던 딸아이도 느즈막이 일어나서는, 저녁이 가까워 올수록 몸에선 힘이 펄펄 나는가봅니다. 그래도 겨울방학 땐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큰 아이는 영·수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아들도 학습지 학원과 복싱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래도 틈틈이 숨통은 트였으니까요.
오늘도 뭔가 모르게 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가만 앉아 있어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집이란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한 곳이 됩니다. 겨울방학을 지내면서 아들은 이제 엄마보다 키가 더 커졌습니다. 요즘은 엄마 대신 텔레비젼과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푹 빠져 즐거운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엄마 품 안에 있을 때가 그립기까지합니다. 책 몇 권 챙겨서 가방에 넣고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 카페든 도서관이든 어디든 따라나서던 아들이었는데, 이젠 몸을 꿈쩍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선이, 서로를 붙들어 메고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인지, 그 얽히고 섥힌 속에서의 행복이란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릅니다.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들의 몸은 점점 쇼파와 혼연일체가 되려는 듯 거대한 몸집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몸된 성전이 마치 대형교회처럼 식탐으로 살만 찌고 있는 모습 같습니다. 저렇게 거대하지만 엄연히 거룩한 성전이기에, 엄마로써 매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심어주려고 공연히 애를 써보지만, 대형교회를 보듯 하늘을 막고 선 고층 아파트를 보듯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가난한 마음, 빈 마음이라야 하나님의 은총으로 채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요. 하지만, 아들의 마음 속 어딘가엔 저도 엄마도 모르는 빈 곳이 자리하고 있을 테지요. 하나님이야말로 예측불허 자유의 하나님이시니까요. 자녀의 때는 하나님만 아실 테니까요.
별달리 하는 일도 없이 삼시 세끼와 간식까지 챙겨 먹으려는 아들이랑 함께 있으니, 덩달아 저도 살만 찌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아무도 안만나야지 싶은 마음도 듭니다. 밤에는 운동 삼아서 일부러 청소기를 놔두고, 쪼그리고 앉아서 방바닥을 닦아 보기도 했습니다. 청소기를 돌릴 때와는 사뭇 다른 집 안 풍경이 낮게 펼쳐집니다. 제가 아홉살 무렵이던 때 경험이 떠올라 실없는 웃음이 납니다. 그 작은 몸집으로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던 추억입니다. 빛이 들지 않는 마루 밑에서 내다본 바깥 세상은 가로로 길게 환한 빛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왔다갔다 신발이 보이긴 했지만, 아무도 제게 나오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사 오던 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설레임으로 마루 밑을 기어서 천천히 구석구석 낮게 살피었습니다. 먼지에 휘감기는 머리를 잘못 치켜 들면 삐져 나온 대못 끝에 찔릴 수도 있었지만, 그때 조심성이 길러졌는지도 모릅니다. 먼지 투성이 손바닥에 닿던 마른 쥐똥도 두 손끝 사이에 콩알탄으로 쏘던 쥐똥나무 열매를 보듯 별로 더럽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서 마루 밑을 탐험하는 일은 어수선한 마당 곧 일상의 일에서 저만치 벗어난 딴 세상의 일이었습니다. 유년기에는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종종 혼자 뒷산 바위산에 올라가서 발아래 대신동 마을을 소꿉마을처럼 내려다보기도 하고, 하늘과 한참을 마주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풍경이, 그 모습 그대로 푸르게 펼쳐지곤 합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운전 조심하고,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삿말이 떨어지자마자 현관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에, 저는 혼자가 되는 그 홀가분한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혼자서 하는 설겆이도 즐겁기만 합니다. 좋아하는 강의나 말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으니까요. 밥그릇을 씻다 보면 가슴이 달그락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고무장갑을 벗어 놓고 식탁에 앉아서 글을 씁니다. 일상의 삶과 읽기와 배움과 글쓰기와 기도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고요한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떠난 후 집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저에겐 고요한 기도의 시간과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점점 그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일상의 바쁜 삶 속에서 여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시는 바쁜 생활인들에 대해서 아릿한 마음도 듭니다. 어쩌면 화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고요함. 마음 속에선 늘 뭔가 모르게 사막처럼 갈증이 나지만 신기루처럼 잡히지도 않고, 하늘처럼 채워지지도 않는 그 허기를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 그래서 저를 비롯한 문명인들이 더욱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영상물, 영화, 여행, 연애, 먹방 음식, 성형, 다이어트, 외모 꾸미기, 집, 땅 등 늘 시선이 밖으로 향하는 헛헛한 마음들. 일상 속에 잠시잠깐 주어지는 고요한 시간이 없다는 것은, 행복이 머무는 마음의 자리가 빈약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고요.
제게 고요함이란 홀로 있는 가운데 주어지는 시간 밖의 시간입니다. 처음엔 대부분 아주 쓸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 쓸쓸함과 무료함과 따분함과 심심함 그 너머에 있는 고요함을 맛보았기에, 제게는 이제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시간 밖의 시간입니다. 딸아이와 아들은 그 무료함과 심심함의 텅 빈 마음을 유튜브와 텔레비젼과 먹방 음식으로 채우려는 듯 헛헛해 보이기까지합니다.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에게 심심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문명의 힘이 거센 파도처럼 느껴집니다. 엄마의 잔소리 쯤은 금새 삼켜버리고 마는 힘센 파도 같습니다. 고요함은 그 쓸쓸함과 심심함의 좁은 길을 홀로 견뎌낸 후 비로소 만나게 되는 고독의 방이니까요. 언제쯤 아이들이 그 문명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물결 위에 작은배를 띄우고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유유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고요함을 누릴 수 있을런지요.
잠을 자야 하는 밤인데 오히려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히 빛나는 딸아이가,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오늘밤에도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고 합니다. '천 번 휘저어서 계란말이 만들기'.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할 게 없으니까, 이런 짓도 한다면서 딸아이는 함박웃음에 신이 났습니다. 못 이기는 척 그러라고 했습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그렇게라도 단순한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깃들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계란 노른자는 따로 덜어 두고 계란 흰자만 천 번을 휘저으면 된다고 합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마룻바닥을 닦다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몇 번째냐고, 그랬더니 숫자를 살리지 않고 그냥 젓고 있었다고 합니다. 눈은 텔레비젼에 가 있고 손만 휘젓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설겆이를 하면서 주일예배 동영상을 틀어 놓던, 제 몸과 정신이 따로 분리된 모습을, 딸아이를 통해서 비추어 보는 것 같아서 마룻바닥을 닦다 말고 웃음이 났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홀로 있는 고요한 이 시간을 사랑합니다. 비로소 제 마음이 평온한 안식을 누리는 고요한 시간이니까요. 기도가 빠질 수 없습니다. 말이 된 기도가 아닌 그저 어릴적 보았던 커다란 하늘의 침묵 속에 잠기는 침묵의 기도입니다. 방안에 불을 끄고, 책상 위에 스탠드불을 켜고, 작은 촛불을 켭니다. 아무 말없이 묵묵히 고요히 앉아 있는 이 평온한 시간 속에서 가슴으로 예수를 떠올립니다. 한 점 별빛처럼 해처럼.
가슴이 따스해져 오면 비로소 제 영혼이 쉼과 안식을 누립니다. 그 시선으로 바깥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제 자녀에게 참으로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건물 덩어리보다 이 고요함입니다. 외부로부터 길들여진 소유가 아닌 존재만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천국의 마음자리가 됩니다. 영성가이자 수도승인 토머스 머튼도 '관상의 기도'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요히 머무는 고독 속 침묵의 기도는 이미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지상에서 만나는 천국이 됩니다. 제게 있어서 고요한 고독은 평온한 사랑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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