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2)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인우재 기도실을 청소하던 중, 기도용 의자에 눈이 갔다. 무릎을 꿇고 앉을 때 엉덩이 아래에 괴면 몸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작은 의자 표면이 먼지로 지저분했다. 의자를 닦기 위해 우물가를 찾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먼지를 닦다가 의자 아랫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 의자의 아랫부분 곳곳이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찌 의자 아랫부분이 흙으로 채워져 있을 수가 있을까, 위에서 흙이 떨어졌다면 의자 위에 남아 있을 터, 의자 밑 부분을 채우고 있는 흙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막대기를 가지고 와서 흙을 빼내려다 보니 흙 속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작은 애벌레였다. 칸마다 서너 마리씩의 애벌레가 흙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흙을 물어와 집을 짓는 작은 벌 나나니나 호리병벌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기도실 의자 밑 부분에다가 알을 낳아둔 것이지 싶었다. 벌들은 어떻게 그곳을 찾았을까, 그곳이 가장 은밀하다는 것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리고 저만한 흙을 옮기려면 얼마나 수없이 기도실을 드나들어야 했을까, 문득 생명을 지키려는 수고가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기도실을 청소하고 무릎을 꿇어 의자 위에 앉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방금 전에 떼어낸 의자 밑 흙으로 갔다. 아무도 모르는 곳을 살펴 긴 수고 끝에 알을 깐 벌,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정성과 조심스러움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었다. 사람 눈에 잘 띄지도 않아 있는 줄도 모르는 벌이 저만한 정성을 기울여 생명을 키우는 것이라면, 한 영혼을 얻기 위한 우리의 수고는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을 조심스럽게 지나야 하는 것일까, 무릎 위로 두 손을 모으는 마음이 숙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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