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0)
기도실 문살
세월이 지나면 곰삭는 것 중에는 문살도 있다. 인우재 기도실 문살이 그랬다. 아랫말 무너진 돌담의 돌을 흙과 쌓아올린 기도실에는 동쪽과 서쪽에 작은 창이 두 개 있다. 동네 어느 집인가를 헐며 나온 것을 기도실 창으로 삼았다. 햇살이 비치면 고스란히 문살이 드러나는데, 예쁜 문양으로 서로 대칭을 이루던 것이 노인네 이 빠지듯 곳곳이 빠지기 시작했다.
문살은 헐거워지고 창호지는 삭아서 결국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떨어진 문살을 보면 장인의 솜씨를 느끼게 된다. 무슨 연장을 사용한 것인지 작은 나무토막 양쪽 끝을 날카롭게 벼려 자기보다 큰 문살들과 어울리도록 만들었다. 큰 문살들이 휘는 곳에는 ‘V’자 형태로 움푹 파인 부분이 있어 서로가 자기 자리에 꼭 들어맞도록 했다. 못이나 접착제 없이도 서로 빈틈이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문살 전체가 활을 쏘기 전의 활줄처럼 팽팽 소리가 났겠다 싶다.
창호지를 바르기 전에 문살부터 바로잡기로 했다. 헐거워서 떨어진 문살보다 조금 길이를 늘려 나무를 깎아 끼워보니, 제대로 모양을 잡았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하나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니 다른 곳에 있는 문살이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한쪽이 팽팽해지니까 다른 쪽이 헐거워진 탓이었다.
곰곰 생각하다가 헐거워진 문살을 모두 떼어 냈다. 허물어지듯이 문살은 쉽게 빠졌다. 세월이 지나 사람이 늙으면 서로 맞물려 있던 뼈들도 저렇게 허물어지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문살을 모두 떼어냈을 때 남은 문양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십자 무늬였다. 십자 무늬는 다른 문살을 걸기 위한 기본구조로 아예 문틀에 고정시켜 놓은 것이었다.
십자 무늬의 단순한 문양은 기도실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헐거워진 문살을 복원하는 대신 십자 무늬의 문살 위로 창호지를 바르니, 일부러 문살을 그렇게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기도실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요란함이든 화려함이든 내 삶이 버릴 것을 버려 그분의 뜻과 어울렸으면, 다른 문살 다 버리고 십자 무늬로 돌담 기도실과 어울리는 작은 창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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