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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by 한종호 2020. 7. 17.

신동숙의 글밭(190)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가지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으레 나무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둥그런 그루터기 그늘 진 곳에는 어김없이 초록 이끼가 앉아 있고, 밝은 곳에는 작은 풀꽃들이 저절로 피어있습니다. 개미들은 제 집인양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에 생기가 돕니다.


저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잘려 나갔을 낮고 낮은 그루터기지만, 언제나 우뚝 키가 높고 높은 나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그루터기가 보이면, 점점 눈길이 머물고, 발걸음은 느려지고, 생각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작고 여린 생명들에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집이 한껏 낮아진 나무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하늘로 뻗치던 생명을 잃은 후에도, 주위에 흔한 작은 생명들을 품고서 스스로 집이 된 나무 그루터기. 스물여덟 살, 17년 전에 걷던 인도의 방갈로르, 숲이 우거진 가로수 길이 떠오릅니다. 방갈로르는 명상가인 오쇼 라즈니쉬의 아쉬람이 있는 인도 남동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 위하여 찾아드는 하얀집. 마당가 한쪽에선 하얗게 긴 옷자락을 느리게 펄럭이며 하늘로 한껏 나뭇가지처럼 팔을 뻗치고 서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는 서양인들의 모습에 흠칫 낯선듯, 하지만 그곳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모습인 듯 보이던 문득 다른 세상입니다.


우람하게 줄지어 선 가로수들이 나뭇가지와 잎을 하늘로 한껏 뻗치고 서 있던 길. 저도 한껏 작은 생명이 되어서 느리게 걷던 고즈넉한 길입니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백 년은 넘음직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점점 가까워질 수록 뭔가 주위에 있는 나무들과는 그 빛깔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마주섰을 때는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무 속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커다란 나무에는 깊은 구멍이 동굴처럼 뚫려 있었고, 나무 속은 앉아 있는 남자의 집인 듯 솥과 접시가 바닥으로 보였습니다. 젊은 남자는 부시시 이제막 잠이 깬 듯 나른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혹 실례가 될까봐 멈춰 서서 안을 살펴볼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습니다. 


저와 잠시 눈길이 마주친 삐쩍 마른 남자는 헝클어진 머리칼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걸어가던 걸음에 스치듯 본 그 한 장면이 제겐 화두가 되었습니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은 석가의 모습 같기도 하고, 깊은 명상가 라마나 마하리쉬의 평온한 얼굴이 겹쳐지기도 하면서, 그대로 사람이 한 그루 나무가 되는 이치입니다.


자녀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아침이면, '오늘은 어디에 앉을까?'하고 생각합니다. 늘 마음에는 공부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공부, 필사, 움직이는 동안에는 유튜브로 듣는 경전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한 자리에 앉는 일은 무엇보다 온전한 공부, 온전한 휴식이 됩니다. 사실은 앉아 있기 위하여 일상 속 움직임인 나머지 공부들로 준비를 한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앉아 있음으로 인해 비로소 걸어 들어가는 내면의 산책길에선 언제나 진리의 말씀이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오경웅 저 · 송대선 한글 역해의 <시편사색>에 나오는 '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優游聖道中 涵泳徹朝夕) 거룩한 말씀 속에 한가로이 거닐며 온종일 말씀 안에 젖어들기 즐기네'의 시편 1편 4절의 말씀은 사람이 일평생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지복(至福)인 것입니다.


법정 스님과 다석 류영모 선생은 한결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루 온종일 일을 하거나 또는 수개월 동안 책을 읽는 일보다, 잠시 머물러 앉아 있는, 그 멈춤의 시간이 더욱 충만한 시간, 온전한 공부인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모순과 역설로 표현되는 불교의 중도 사상을 아인슈타인의 등가 원리로 풀이하기까지 동서고금의 책들과 치열하게 겨루신 성철 스님. 스님의 임종 시간, 상좌인 원택 스님의 품에 안겨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참선 잘하그래이"입니다. 


성철 스님의 법문 중 '자기를 바로 봅시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한다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지금까지도 북미인들이 열광하는 카톨릭의 수도승이자 영성 작가인 토머스 머튼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독가이면서 80여권이 넘는 저서를 남기고도 그의 미개봉 글은 아직도 박스 안에 쌓여 있다고 합니다. 다독가이자 다작가인 머튼이 동서고금의 고전과 경전들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하루 중 가장 그리워한 시간은 바로 관상의 기도 시간입니다. 고독과 침묵 속에 머무는 고요한 시간을 두고 그는 미리 맛보는 천국, 에덴 동산이라고 얘기합니다. 고요히 앉아서 이미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 속의 시간, 비로소 영혼이 쉼을 얻는 안식의 시간이 다름아닌 앉아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오늘은 가지산 석남사 한적한 오솔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천천히 걷다가 앉을만한 곳이 보이면 앉기로 하는 여정입니다. 매표소 입구에 있는 돌벽으로 된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옥빛의 나방은 몸집이 한 뼘은 됨직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앉았는 자리가 나뭇잎도 아니고 꽃잎도 아닌 플라스틱 세면대인 것이 아름다운 모습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날아갈 때 날아가더래도 숲 가까이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에 가방을 뒤졌습니다. 필통을 손잡이 삼아서 꽃술처럼 연약한 나비보다 어여쁜 나방의 발에 살풋 놓아주었더니, 망설임도 없이 검정색 가죽 필통으로 오릅니다. 몇 걸음 걷다가 적당한 풀숲에 놓아줘도 되고 그대로 날아가버린다 해도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발걸음을 계속 옮겨도 나방은 잔바람에 나뭇잎처럼 떨기만 할 뿐 제 가죽 필통에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어디까지 동행할까 싶은 궁금한 마음에, 아예 석남사 경내까지 함께 가보기로 마음을 내었습니다. 오솔길을 오르며 마주치는 스님들께 합장 반배의 인사 드리기를 수차례. 그러는 동안 제 두 손 사이 끝에서 옥빛 나방은 스님들과 인사를 많이도 주고 받았습니다. 무슨 인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에 마음은 저절로 한없이 깊어만지는 이치입니다. 


대웅전 뒤편에 작은 조사전(祖師展) 돌계단에 층층이 앉은 능소화가 가지런히 눈에 들어옵니다. 주황빛 능소화는 낮에도 주위를 밝히는 환한 꽃등입니다. 나뭇가지에 달린 연등처럼 풍경처럼 달려 있는 능소화 꽃잎에 살풋 앉혀 주려 하였습니다. 저처럼 꽃이 반가워 곧장 떠나갈 줄 알았던 옥빛 나방은 방향을 바꾸어 제 팔로 기어올라 오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나방을 좋아하지 않지만, 누가 봐도 나비보다 더 아름다운 나방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간지러워서 도로 주황빛 능소화 꽃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온전한 생명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시 기도드리며, 탑전으로 걸음을 옮기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앉을만한 자리를 살피었습니다. 돌탑을 한바퀴 돌면서 둘러보니 탑 양쪽으로 긴 나무 의자가 둘 놓여 있습니다. 해를 등지고 앉으려 고개를 들어서 챙 넓은 모자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치우침도 없이 제 머리 위에 앉아 있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입니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간간히 오더라도 제가 앉아 있는 모습에 흠칫 놀랄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참선 도량 석남사 경내인 것입니다.


한 시간 남짓 앉았다가 다리를 풀면서 천천히 돌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푸른 하늘이 눈앞에  가까이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하늘은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일테지요. 그냥 가려다가 혹시나 싶어 능소화 가까이 가서 보니, 옥빛 나방도 처음 앉은 그 자리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여린 다리로 능소화 꽃잎에 옥빛 등처럼 매달려 선정에 들었습니다. 주황빛 능소화 꽃잎과 옥빛 나방은 이미 한 몸이 되어서 잔바람에 한들한들 하나의 숨을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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