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79)
상처, 신에게 바치는 꽃
먼 나라에 저녁답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강물에 꽃을 띄우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꽃을 바치는 이들에게 신이 말하기를,
"아이야~ 이 꽃은 내가 너에게 보내준 꽃이잖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너에게 받고 싶은 꽃은 이 꽃이 아니란다. 해와 비와 바람으로 내가 피워낸 꽃이 아니란다. 아이야~ 네가 피운 꽃을 나에게 다오."
아이가 대답하기를,
"내가 피운 꽃이요? 아무리 고운 꽃잎도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면 상처가 있고, 속에는 잔벌레들이 잔뜩 기어다녀요. 가까이 다가가서 꽃나무를 한바퀴 빙 둘러 낱낱이 살펴 보아도 상처 없는 꽃잎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는 걸요. 사람의 손이 조화를 만들면야 모를까. 조화를 생화처럼 보이도록 상처와 얼룩을 일부러 점 찍는다지요. 이처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는 다 자기만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하니까요. 신에게 바칠 만한 완벽한 꽃이 나에게는 없는 걸요."
신이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꽃은 너의 아픈 상처란다. 세월이 가도 어둔 가슴에 박혀 쉬 빠지지 않는 별 같은 상처. 그때와 비슷한 순간을 만나면 가시처럼 돋아나는 말 못할 너만의 아픔이 네가 피워낸 가장 아름다운 꽃이란다."
상처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언제나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의 영역입니다.
누군가는 가슴 속 상처로 인해 밤이면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나의 상처를 알아줄 만한 이를 찾아 세상을 검색하기도 합니다. 좀 더 승화시켜서 말과 글, 그림으로, 음악으로, 춤으로, 섬김으로 좀 달리 때론 타인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표현하기도 하고요.
저녁답이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혼자 쓸쓸해 하기도 하고, 문득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다가도, 대부분은 일상에 뭍혀 그것이 아픔인 줄도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냥 가슴 속에 차곡차곡 뭍어 두기만 하는, 때로는 그립기까지한 당신의 아픔.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꽃이란? 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인간의 아픔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방실거리며 잘 놀다가도 넘어져, 무릎이 까여서 피가 나는 무릎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가던 길 되돌려 엄마에게 달려가는 순간처럼, 그 순간이 함께 아프지만 돌이켜 왔기에 다행이다 싶은 순간.
우리는 매일 넘어지고 늘 아픕니다. 어려서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지고, 나이가 들어서는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해 매 순간 넘어지고, 또 일어남에 무디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속을 들추어 보면 여전히 아픈.
우리의 마음도 하루를 살아가며, 그 넘어짐과 부딪힘의 모든 미세한 순간마다, 우리의 감각과 삶 사이에는 미세한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그 때 일어나는 모든 희노애락과 아픔들, 한치 앞도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무지로 인한 괴로움.
희노애락과 아픔과 무지와 그 모든 살아 있음에 대한 자각들, 살아 있기에 깨어 있기에 느낄 수 있는, 단지 바람을 바람으로 느낄 수 있는 그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모든 살아 있는 감각들이 피워내는 삶의 꽃. 바로 인간이 피워내는 인생의 꽃.
내가 피운 꽃은 다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 그것이 신이 우리 인간에게 바라는 꽃, 재물이 아닐까 하고, 이 저녁 박꽃을 보며 고요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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