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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by 한종호 2020. 7. 1.

신동숙의 글밭(178)


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소리가 맑은 벗님이랑 찾아간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밀양 표충사 계곡입니다. 높은 듯 낮은 산능선이 감싸 도는 재약산 자락은 골짜기마다, 어디서 시작한 산물인지 모르지만, 계곡물이 매 순간 맑게 씻기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주말이라 그런지, 표충사에 가까워질수록 휴일을 즐기러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런 날, 어디 한 곳 우리가 앉을 만한 한적한 물가가 남아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도 되었습니다. 


해가 어디쯤 있나, 서쪽으로 보이는 바로 저 앞산 산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하늘이 어둑해지기 전에는 산을 내려와야 하는 여정입니다. 널찍하게 누워서 흐르는 계곡물 옆에는, 줄지어 선 펜션과 식당과 편의점과 널찍한 놀이터가 있어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이고 있는 산놀이 물놀이 풍경을 보니, 몇 해 전 교회 수련회 때 교인들과 함께 한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계곡물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누웠던 계곡물이 비스듬히 몸을 조금 일으킨, 산 속 오솔길을 따라서 오르는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집니다. 맑은 산새 소리에 귀가 밝은 벗님은 금새 얼굴빛이 어린 아이가 되었습니다. 벗님은 커다란 짐을 말없이 제 빈 손에 들려주고는, 작은 가방을 손에 들고 묵묵히 앞서 걷습니다. 


제가 건네 받은 커다란 짐은 분홍색 돗자리입니다. 새의 날개처럼 가벼운 돗자리를 손에 들고서 가볍게 천천히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 옛날 돗자리를 손에 들고, 김밥과 과자로 꽉꽉 채운 배낭 가방을, 산등선처럼 불룩해진 모양으로 어깨에 짊어지고서, 학교 뒷산 구덕산으로 참새처럼 신나게 소풍을 가던 초등학생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괜히 웃음이 납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벗의 가방 안을 넌지시 보니까, 무언가를 딛고 올라선 작은 생수병 파란 뚜껑이, 작은 얼굴을 내밀고서 저를 보고 있습니다. 산에선 소용 없을 지갑과 자잘한 소품들을 비운 제 천가방 자리가 헐렁해, 생수병 뚜껑 머리를 쥐고, 제 천가방 넓은 방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벗은 보고도 못 본 척 해줍니다. 그러는 제 입에선 실없는 한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나한테는 커다란 짐을 주고, 자기는 작은 가방을 들고 간다며...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벗의 작고도 무거운 가방을 읊조리며, 괜스레 무거운 마음을 계곡물로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가까이 보이던 높고 낮은 산능선은, 눈 앞에 우뚝우뚝 하늘 높이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다가 안보이다가, 어느새 숲 속입니다. 계곡물은 잠시 누웠는가 싶으면 이내 커다란 바윗돌을 만나 다시금 일어나서 흐르기를 쉼이 없습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한 번 담근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이치를 오늘도 계곡물은 말없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 순간을 새롭게, 그렇게 물은 쉼없이 흐르기에 맑은 것인지, 제 안에 쉼없이 떠오르는 생각도 계곡물처럼 쉼이 없어서, 머무르는가 싶으면 또 맑게 맑게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흐릅니다. 잠시 머무르는가 싶다가도 세차게 달리기 하는 물살을 보며, 땟국물 낀 어릴 적 얼굴을 뽀독뽀독 씻겨 주시던 엄마의 손길 같아서 잠시 아찔해져 정신을 잃기도 합니다.


분홍 돗자리를 넓게 펼만한 곳을 찾아서, 우리의 발걸음은 자꾸만 계곡물을 따라서 오솔길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 갈수록 물길은 좁아지고 사람의 모습도 보기 드문 풍경이 됩니다. 그곳엔 장사를 하는 식당도 펜션도 없습니다. 물가에서 어른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낮의 휴식을 즐기고, 물 속에선 튜브를 탄 아이들이 첨방거리는 모습도 점점 멀어져 어느새 그리운 풍경이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계곡물가엔 나무 그늘이 있어서 한낮의 더운 해를 가려주고, 분홍 돗자리를 뭉게 구름처럼 펼쳐도 툭 튀어나온 돌멩이에 엉덩이가 베기지 않을 자리를 찾아서, 나무 그늘 울창한 산 속 오솔길을 오르는 고즈넉한 산책길입니다. 오르는 날숨이 가쁘지 않고, 들숨이 차지도 않아 고요한 산책길, 홀가분한 걸음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다가 문득 먼저 본, 저 먼 산 능선을 좀 보라며 멈추어 서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청솔모 기척에 놀라기도 하며, 청빛이 도는 자그맣게 핀 산수국에 똑같이 눈길이 머물기도 합니다.


그리고 표충사 우측으로 완만하게 일어선 계곡을 따라서 거슬러 오르며 한 생각을 이어갑니다. 우리가 지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풍경이 마치 한국의 대형 사찰과 대형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계곡을 오를 수록 한적해지는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어느 산 속 암자나 외진 천주교 은둔자들의 성지가 자리 잡고 있을만한 곳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 속에서 첨방거리며 신나는 아이들과 걱정스러운 듯 지척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하늘에 울리던, 널찍하게 누운 계곡물가의 풍경이, 마치 강물처럼 넓게 흐르는 대형·중형 교회에서 보았던 풍경처럼 그려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눈 밝은 목회자와 성도가  있어 뿌연 흙탕물 같은 강물 속에도, 쉼없이 먼 길을 흘러온 맑은 계곡물이 끊임없이 섞이어 함께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칩니다.


계곡물을 거슬러 오르듯,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더라.'의 예수처럼, 홀로 고독과 침묵의 산으로 오르는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 홀로 관상 기도의 안식처로 들어가시는 목회자와 성도와 모든 종교인과 신앙인들과 구도인들이 향하는 그 좁은 오름길. 그  뒷모습은 어디를 보나 예수를 닮아 있습니다. 


저는 그 홀로 걷는 좁고 맑은 길, 진리의 원천을 찾아서 걷는 관상 기도의 길, 그 호젓한 산책길을 걷고 있을 어느 기독교인들의 모습에서 석간수를 그려봅니다. 이 땅에 흐르는 모든 물에는 원천인 샘이 있듯, 늘 머리속을 흐르는 생각에도 원천인 샘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땅으로 뿌리를 내리듯 하늘로 가지를 뻗습니다.


인적이 드문 좁게 일어선 계곡물의 그 홀가분한 오름길을 걸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걸으시는 스님, 신부님, 수녀님의 그 쓸쓸한 듯 호젓한 걸음을 생각합니다. 반면에 같은 구도의 길을 걷지만 결혼과 가정이라는 축복 선물까지 어깨에 짊어지고서, 더러는 안고 가셔야 하는 개신교 목회자의 녹록치 않은 그 삶이 저는 늘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요?


맑은 벗과 나란히 앉아서 쉴만한 곳, 돗자리를 펼칠만한 호젓하고 맑은 계곡물가를 찾아서 오르는 걸음이, 마치 오늘 저에게 주어진 하루치 구도의 길 같습니다. 밀양 재약산 표충사 계곡물은 어디메서 샘솟기에 자꾸만 흘러 내려오는지, 비가 그쳐도 계곡물은 마르지도 않는지, 그 산물이 이어져 오늘도 강물은 세상 한 복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고 있는 것인지, 


이 궁금증은 산을 다 내려오면서도 씻기지가 않아, 제 방 안에까지 길게 흘러 제 안으로 물길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러 제 자신이 그 물길 어디메쯤 걷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지만, 이제는 이 생각의 원천을 저 먼 산 너머가 아닌, 제 가슴 한 복판에 가만히 품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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