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찻물의 양

by 한종호 2020. 8. 13.

신동숙의 글밭(210)


찻물의 양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분명 언제부턴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 터입니다. 어쩌면 선조들의 무의식에 각인이 되어 있어서 입에 쓰지 않으면 몸에 유익함이 부족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일으키게 하는 선입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차를 자주 마시다 보니 가끔 저에게 찻물의 양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계량된 물의 양대로 맞추어야 하는지, 말하자면 이왕에 우려서 마시는 차 한 잔에서 최상의 효과까지 기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 드립니다. 목 넘김이 편안한 정도로 물의 양을 조절하시고, 우려내는 시간도 조정하시면 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계량은 참고만 하시고, 찻물의 기준은 내 몸이 되어야 합니다. 보이차와 히비스커스를 통한 다이어트를 목적에 둔 경우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제 대답이 영 싱겁고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소금간의 예를 들어 설명해 줍니다. 찻잔에 물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몸에 필요한 소금의 농도를 맞추실 때를 생각해 보시라고 얘기해 줍니다. 처음에는 소금을 살짝 넣어서 맛을 본 후 싱거우면 두어 차례 더 넣어 가면서 내 입맛에 맞추어 소금의 양, 즉 간을 맞추게 됩니다. 허브차와 구수한 전통차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소금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하여, 욕심껏 밥숟가락으로 찻잔에 소금을 듬뿍 떠 넣고 휘휘 저어 마신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제 얘기를 듣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집니다. 일단, 입안에서 그리고 목 넘김에서 괴로움을 동반합니다. 고통을 수반한 짜디짠 소금물이 끼치는 몸 속 작용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목 넘김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고혈압, 동맥경화 등등 온갖 질병까지도 유발할 소지가 다분한 것입니다.


찻잎의 양과 찻물의 양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오랜동안 차를 마셔온 저에게 가끔 물어 오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제가 겪은 차에 대한 좋은 경험들일 터입니다.


먼저 내 몸과 입맛이 기준이 되어서 목 넘김이 편안한 정도로 물양과 찻잎을 우려내는 시간을 조정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 몸이 맑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일명 단짠, 달고 짠맛에 길들여지고 있는 자녀들이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심심하고 순한 자연에서 난 채소와 곡식 본연의 맛을 오래 천천히 씹어서 음미하기도 전에 숟가락을 놓고 학교와 학원과 유튜브로 달려가는 자녀들이 애처로운 것입니다. 


목 넘김이 좋은 차는 저절로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편안하고 순하게 몸에 흡수된 찻물은 우리 몸 속에서도 그와 같이 순하고 편안한 작용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영향력이 마음에까지 전달된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가 될런지요. 



좋은 차란, 향이 꺼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향이 좋고 색이 선명한 빛깔을 띄며, 물에 우렸을 때 맑아야 합니다. 목 넘김이 물처럼 순하며, 왠지 몸이 밀어내는 듯한 바침이 없어야 합니다. 커피와 차를 마실 때 코와 입속에서 바침이 있다면 제다 과정과 로스팅 중에, 충분히 독성을 빼지 않았음으로 이해합니다. 색향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과 조화를 잃게 된다면 좋은 차와 커피는 아닌 것입니다.


만약 차를 사람으로 본다면 진선미로도 대체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진실되고, 선하며,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사람을 두고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하는 인간상이라면, 그처럼 좋은 차란 색향미를 고루 균형있게 갖춘 차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신 후 뱃속이 편안해지고, 가슴이 열리고 따뜻해지면서 몸과 마음까지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하는 차가 좋은 차입니다.


그리고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옛말의 의미를 거듭 생각해 봅니다. 꾹 참고 힘들게 애를 쓰며 일을 해야 뭔가 일을 한 것 같고, 성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사람의 일도 물이 흐르고 구름이 흐르듯 자연의 흐름처럼 저절로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흘러가게 할 수는 없는가. 사람의 욕심으로 열심을 내고 애를 쓰는 일의 의미를 다시금 한번쯤 점검을 해 보아야 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각인된 의식으로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저서를 집필한 정약용 선생은 다산(茶山)이라는 호를 스스로 붙일 만큼 차를 곁에 두고 마셨다고 합니다. 좋은 책과 차가 없었다면 18년의 유배생활을 견디며, 그렇게 방대한 저술을 남김으로 후손들에게 커다란 의미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한 잔의 차와 커피가 고통을 수반하는 매개체가 아닌, 더위 가운데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 주는, 하루 일과 가운데 틈틈이 휴식과 위로와 벗이 되는, 사람과의 만남 가운데 편안하고 진실된 소통의 다리가 되어 사랑이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