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84)
나누는 마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받았다. 그저 심부름만 했을 뿐이라고 인사 받을 때마다 대답했지만 계속되는 인사엔 남이 받아야 할 인사를 내가 대신 받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도 했다.
물난리 소식을 들었다며 수원에 있는 벧엘교회(변종경 목사)와 원주중앙교회(함영환 목사)에서 성금을 전해 주었다. 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신혼부부가 드린 결혼반지가 포함된 정성어린 손길이었다.
어떻게 써야 전해 준 뜻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라면을 사기로 했다. 크건 작건 수해 안 본 집이 없는 터에 많이 당한 집만 고르는 건 아무래도 형평성을 잃기 쉬울 것 같았다. 먹거리가 아쉬운 집에 겨울 양식으로 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일은 나중에 다시 관심을 갖기로 했다.
작실, 섬뜰, 끝정자 모두 헤아리니 한 집에 한 박스씩 전할 수가 있었다. 전한다고 하는 건 늘 어려운 일. 카드를 써서 라면을 전하는 사연을 적었다.
단강마을 여러분께.
지난번 뜻하지 않은 물난리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애써 가꾼 농작물들과 무엇보다 소중한 논밭이 망가졌을 때, 그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겪은 아픔을 염려하며 전해준 사랑의 손길이 있어 이렇게 작은 정성에 담아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립니다. 여러분이 겪으신 어려움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사랑으로 여기시고 기쁘게 받으시면 저희도 기쁘겠습니다.
수확의 계절, 주님의 위로와 은총이 여러분 가정마다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저희들도 여러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라면박스마다 카드를 붙였다. 집집마다 전하는 일은 각 마을 반장님들이 수고해 주셨다.
마을 분들이 고마워했던 건 단지 라면 한 박스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그건 당한 고난에 비한다면 지극히 작은 것이다. 몰랐던 누군가가 우리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고난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던 것이다. 남의 것도 빼앗아 제 것을 삼으려는 세상 속에서 그런 일은 여간 드문 일이지 않은가.
따뜻한 정성이 가슴마다 훈훈한 기운을 일으키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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