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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제풀에 쓰러지는

by 한종호 2020. 9. 16.

한희철의 얘기마을(86)


제풀에 쓰러지는



아침 잠결에 풀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밤새 내린 비, 뜨끔했다.

설마 예배당, 아니면 놀이방, 그것도 아니면 화장실, 놀라 달려 나갔을 때 무너져 내린 것은 교회 앞 김 집사님네 담배건조실이었다.


지난번 여름 장마에 한쪽 벽이 헐리고 몇 군데 굵은 금이 갔던 담배창고가 드디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제법 높다란 높이, 길 쪽으로 쓰러져도 집 쪽으로 쓰러져도 걱정이었는데 사방에서 힘을 모아 주저앉힌 듯 마당 쪽으로 무너져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문 벽을 쳐서 헛간 한쪽이 주저앉았을 뿐이었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속에서 동네 남자들이 모여 주저앉은 헛간을 일으켜 세웠다. 몇 곳 버팀목을 괴고 못질을 했다. 담배 창고로 끌어간, 흙더미 속에 묻힌 전깃줄도 잘라낸 뒤 테이프로 감았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제 풀에 쓰러지는 담배 건조실.

제풀에 쓰러지는 것들이 어디 담배 건조실뿐일까만.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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