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90)
한참을 발 못 떼는
“작년에는 수해 당했다구, 얘들 학비도 줄여주구 하더니, 올핸 그런 것두 없네유. 여기저기 당해선가 봐유.”
“하기사 집까지 떠내려 보내구 이적지 천막에서 사는 이도 있으니, 그런데 비한다면 우리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망하니까 사실 힘이 하나도 읍네유.”
“강가 1500평 밭에 무수(무)와 당근이 파란 게 여간 잘된 게 아니었어유. 그런데 하나도 남은 게 없으니. 지금 봐선 내년에도 못해먹을 거 같아유.”
집에 다녀가는 출가한 딸과 손주를 배웅하러 정류장에 나온 한 아주머니가 물난리 뒷소식을 묻자 장탄식을 한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입술이 부르텄다.
가끔씩이라도 고향을 찾는 자식들. 큰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그저 사는 양식이나 마련하고 나머진 자식들에게 먹거리, 양념거리 전하는 게 그나마 외로이 사는 맛인데, 그게 부모 도리일 텐데 갈수록 그 일도 쉽지 않다.
떠난 버스 바라보며 한참을 발 못 떼는 반백의 아주머니.
-<얘기마을,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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